탄핵 후 거세지는 추경론…떨떠름한 정부 "법적요건 충족 못해"

野 "재정 역할 줄어 소비도 축소…지역화폐·AI 등 증액해야"
난색 표하는 예산당국 "시기상조…'경기침체' 요건에도 해당 안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2024.12.15/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김유승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야당을 중심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국 혼란으로 꺼져가는 소비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게 주된 이유다.

그러나 추경 편성 권한이 있는 정부는 이같은 주장에 난색을 보여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현 상황이 추경의 법적 요건인 경기침체도 아닐뿐더러, 예산안 통과 일주일 만에 추경 얘기부터 꺼내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게 예산 당국의 반응이다.

18일 국회와 관계부처에 따르면,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추경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장기간 고금리·고물가가 지속된 데다 비상계엄 사태까지 겹쳐 내수가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있었던 지난 2004년 1분기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0.1% 감소했다. 2003년 2분기(-0.6%) 이후 3개 분기만의 마이너스(-) 전환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의혹이 처음 제기된 2016년 4분기도 소비가 주춤했다. 2016년 4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0.2%로 같은 해 2분기(0.8%)와 3분기(0.4%) 실적에 못 미쳤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재정 역할 축소에 따른 소비 축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경을 신속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추경을 한다면 (증액할 분야는) 정부가 없애버린 지역화폐 예산, AI(인공지능) 관련 예산, 기반 시설 투자 예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와 야당 간 줄다리기 과정에서 국회가 정부안 대비 대폭 삭감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는 점도 추경 주장의 한 축이다. 앞서 국회 본회의는 지난 10일 정부 예산안 대비 4조 1000억 원 감액한 677조 4000억 원을 내년 예산안으로 확정한 바 있다.

세부적으로 △정부 예비비(-2조4000억 원) △국고채 이자 상환(-5000억원) △대왕고래 프로젝트 관련 예산(-497억 원) △검찰·경찰·감사원 등 특정업무경비 및 특수활동비(-678억 원) 등이 줄었다. 청년과 취약계층 아동의 자산 형성을 돕는 청년도약계좌·아동발달지원계좌 지원 예산도 각각 280억 원, 21억 4800만 원 깎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행 또한 이례적으로 추경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은은 지난 15일 '비상계엄 이후 금융경제 영향 평가 및 대응방향' 보고서에서 "추경 등 주요 경제정책을 조속히 여야가 합의해서 추진함으로써 대외에 우리 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모습을 가급적 빨리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12.17/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다만 추경 편성 권한을 가진 기재부는 추경 주장에 떨떠름해하는 모습이다. 기재부 내에선 추경의 법적 요건을 갖출 만한 상황도 아니며, 예산 통과 1주일 만에 추경을 주장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나온다.

국가재정법 89조에 따르면 추경 편성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발생 △경기 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경제 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의 요건이 충족될 때만 가능하다.

예산당국 관계자는 "국가재정법상 추경의 요건인 '경기침체'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어 판단이 주관적인 측면은 있다"면서도 "야당이 '내수 부진'을 이유로 추경을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현 상황을 '경기침체'라고 할 수는 없어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예산이 불과 지난주에 통과돼 17일 배정 계획이 나왔는데 벌써 추경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지금은 예산을 신속히 집행하는 게 우선"이라고 반발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전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론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내년) 예산이 통과된 지 얼마 안 됐고 시행도 아직 안 됐다. 충실하게 집행 준비를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일축했다.

ky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