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野추경 요구에 "재정, 우선순위 가려 써야"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野 민생회복 추경 편성 주장에 부정적 입장
"중동 사태, 확전 더 안 된다면 환율 다시 안정화 쪽으로 갈 것"
- 김현 특파원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9일(현지시간) 더불어민주당의 민생회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와 관련,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 춘계총회 계기에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차 방미 중인 이 총재는 이날 워싱턴DC 인근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그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53% 수준이라고 소개하며 "다른 나라보다 훨씬 재정 여력이 있으니 경제가 어려우면 이 재정을 활용하자는 견해엔 2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국가부채 비율이) 53%이지만, 우리가 현재의 복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고령화로 인해 정부가 지출해야 되는 국가부채를 생각해 보면 20년 내에 이 숫자가 70%, 90%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숫자만 보고 재정의 건전 상태를 파악해서 '여유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재정을 쓰더라도 일반적으로 쓰기보단 정말 아껴서 타깃으로 해, 진짜 어려운 계층에다 쓰는 그런 우선순위를 잘 가려 써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는 돈을 나눠준다고 해결될 문제라든지, 아니면 이자율을 낮춰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저출산 등 많은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어렵겠지만 사회적으로 구조조정을 통해서 해결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다 정부가 해결해야 된다', '재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임시적으로 아픈 곳에 붕대를 잠깐 바꾸는 것이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 총재의 언급은 민주당이 1인당 25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등을 위해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전날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추경은 보통 경기침체가 올 경우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지금은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것보단 조금 더 민생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중심으로 어떤 타깃(목표) 계층을 향해서 지원하는 게 재정의 역할"이라고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그는 이란과 이스라엘 충돌 등으로 인한 환율 불안정 상황과 관련해 "여러 불확실성이 한꺼번에 터진 상황"이라며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과 미국의 금리인하 통화정책이 생각보다 지연된다는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환율뿐만 아니라 아시아쪽 많은 환율이 동반 약세를 보였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는 일본과 같이 현재 상황이 (원화의) 절하 속도가 과도하게 빠르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미일 3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그런 의견을 공유한 것으로 보이며, 정부도 환율 안정(을 위해) 지금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개입 이후 안정되던 환율이 다시 이스라엘이 이란에 반격함으로써 굉장히 흔들렸다가 더 확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면서 다시 또 안정되는 굉장히 많은 불확실성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 총재는 또 "우리처럼 석유소비량이 많은 나라의 경우엔 지금 중동 사태가 어떻게 될지에 따라 앞으로 향방이 굉장히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다행스럽게 확전이 더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라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확전이 더 되지 않는다면 환율 관리 차원에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확전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유가가 크게 더 올라가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제 생각엔 환율도 다시 좀 많이 안정화 쪽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우리가 예상했던 경제성장이나 물가 예측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아직은 예단하긴 좀 힘든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일 재무장관 회의에서 "최근 원화·엔화의 급격한 평가절하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심각한 우려를 인지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공동선언문이 나온 데 대해 "일본과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이 엔화와 원화의 절하 속도가 과도한 면이 있다는 것을 같이 인식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2022년 중반 0.75%포인트(p)씩 4번이나 연달아 금리를 올리던 때에 비해 지금은 통화정책이 좀 더 독립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도 중반에 미국이 0.75%p씩 금리를 올릴 때는 금리를 올렸다는 사실보다 앞으로도 계속 큰 폭으로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형성됐기 때문에 그 기대로 인해 이자율 자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환율이 더 절하된 면이 있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시장에선 올해 6번 정도의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이제는 1~2번 있거나 없을 수 있다는 기대로 전환됐기 때문에 미국이 4번 연속 0.75%p씩 막 올리던 그런 때에 비해 지금은 미국 통화 정책이 우리 환율에 주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게 됐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화정책이 좀 더 독립적이 됐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미국보다 한국이 먼저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에 대해 "현 단계에서 금통위가 제일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 것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라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하반기가 되면 평균 2.3%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농수산물 가격이 많이 올라갔고, 유가가 최근에 많이 올라가 하반기에 평균 2.3%까지 내려갈 것이냐에 대해선 확신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미국 통화정책의 영향, 환율 등 여러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단 물가가 우리가 예상하는 속도로 내려올지 그것을 우선 확인해야 된다"며 "다른 어떤 요인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확 내려올 것이냐를 우선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시 미국 보호주의 정책 확대 가능성에 대해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어떤 정책을 할 것인지는 이미 여러 문건을 통해 발표가 돼 있다"며 "당연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지금보단 보호주의적 색채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미국에서 제기하는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에 대해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전제한 뒤 "만일 국내 시장만 보고 생산했다면 국내 시장 규모에 비해 과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수출 중심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게 왜 과잉이냐'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저가 상품을 수입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는 경제이론뿐 아니라 사실 정치적인 문제"라며 "이런 문제는 꼭 경제이론뿐만 아니라 협상을 통해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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