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 추경요구에 기재부도 강경모드…재점화된 추경 갈등

총선 이긴 민주, 최소 13조 추경 요구…최상목 "경기침체 아냐" 반대
코로나19 거치며 높아진 정부부채…채권·외환시장, 물가 부담 우려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총선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이 또다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맞서면서 기재부와 민주당 간 '추경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다.

20일 정치권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총선 공약이었던 '전 국민 25만 원 현금지원' 등을 추진하기 위한 최소 14조 3000억 원 규모의 추경을 촉구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살리라는 게 이번 4월 총선의 민심"이라며 "민생회복 긴급조치를 즉각 실행하고 추경 편성에 함께 지혜를 모으고 협력할 때"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내세운 전 국민 25만 원 현금지원 외에도 소상공인 대출과 이자, 에너지 비용 지원을 위한 추경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기재부는 공개적으로 난색을 드러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방미 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IMF(국제통화기금) 본부 건물에서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추경의 목적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보통 경기침체가 올 경우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지금은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것보단 조금 더 민생이나 사회적 약자들을 중심으로 어떤 타깃(목표) 계층을 향해서 지원하는 게 재정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올해 예산을 잡을 때 어느 때보다도 복지 예산이나 민생 예산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면서 "그런데도 부족한 부분들이 있으면 기금을 변경한다든지 이·전용을 해서라도 올해 좀 더 확대할 것은 확대하고, 내년도 예산을 담을 때는 그런 부분들을 또 고려하겠다"며 민주당 요구에 사실상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지난해에도 민주당은 경기부양을 위해 30조 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요구했지만, 당시 추경호 전 부총리는 이를 일축한 바 있다. 지난 여름 집중호우로 수해가 발생했을 당시에도 야당의 추경요구를 거절했다. 추 전 부총리는 자신의 이름에 빗대 '추경불호'라고 불러달라고 할 정도로 완강히 맞서왔다. 민주당이 여당이었던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민주당은 홍남기 전 부총리와 추경을 둔 갈등을 벌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가채무는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국가채무(D1)는 1126조 7000억 원으로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겼다.

최근 IMF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GDP 대비 정부부채(D2) 비중은 55.2%로 2022년에 비해 1.4%포인트 늘었다. IMF는 정부부채 비중이 2029년에는 59.4%까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추경 요구에 대해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벌인 포퓰리즘적 돈 잔치로 인해 국가 재정이 병들었다"며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포퓰리즘을 거두고 현실적인 경제 회복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협조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날(1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통화로 성사된 영수회담에서도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추경을 직접적으로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재부 내에서는 국가재정법상 정한 추경 요건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 발생 △법령에 따른 국가 지출 발생·증가 등 3가지 경우를 추경 편성 요건으로 정해놓고 있다.

추경이 현실화할 경우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피벗(통화 정책 전환) 기대 후퇴로 출렁이고 있는 외환·채권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미국과 우리나라의 금리인하 기대감에 하락세를 보이던 국고채 금리는 최근 중동불안, 연준의 피벗 기대감 후퇴 등으로 인해 다시금 상승세(가격 하락)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달러·원 환율도 치솟으며 14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추경의 재원조달은 대부분 국채 발행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는데, 채권시장이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국채를 더 찍을 경우 수급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내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100조 원이 넘는 국채 만기가 돌아올 예정인데, 차환 물량까지 감안하면 수급부담은 더 가중될 수 있다. 이에 더해 재정건전성 악화는 원화 가치 약세를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의 상황을 경기침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고, 따라서 국가재정법상 정한 추경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아울러 국가 재정건전성도 해칠 수 있으며, 물가를 끌어올리고 외환·채권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