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성 라파엘클리닉 대표 "무료 진료소 필요없는 세상 오길"
"치료 받은 환자들, 건강 회복해 자원봉사자로 만날 때 보람"
소아 간이식 권위자…27년 간 외국인노동자 등 32만명 무료 진료
- 김규빈 기자
무료진료소가 필요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서울 성북구 성북동 소재의 좁은 골목길에 5층짜리 건물이 있다. 미등록 외국인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치유해온 라파엘클리닉이다. 이들은 의료비용 문제, 의사소통 문제, 평일 병원 방문의 어려움 때문에 매주 일요일에 문을 여는 라파엘클리닉을 찾는다. 지난 1997년 처음에 문을 연 라파엘클리닉은 올해 10월까지 총 32만7317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포스트 코로나19로 환자가 몰려 진료를 몇 시간씩 연장하기도 했고, 올해는 의정갈등으로 인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고재성 라파엘클리닉 대표이사(서울대학교 소아청소년과 교수)를 지난 29일 어렵게 만났다.
"제가 지금 하는 게 뭐가 있다고 이런 인터뷰를요. 고생은 저보다 다른 의료진분들이 더 하시는데..."
카메라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고 대표는 "라파엘클리닉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의료진 봉사자, 동아리 봉사자, 후원자 등 이웃 사랑 덕분에 27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고 입을 열었다.
고 대표는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전임의 시절 혜화동 성당에서 서울의대 가톨릭교수회가 중심이 되어 진료를 시작할 때부터 의료봉사에 참여했으며, 이후 가톨릭대학교, 동성고등학교를 거쳐, 이곳 성북동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총 20년 넘게 의료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클리닉에는 고 대표 외에도 매주 일요일 10명 내외의 전문의·간호사·약사, 50명 내외의 의대·간호대학·약대 봉사 동아리, 자원봉사자, 일반봉사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수십 년의 봉사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처음 여기를 찾았을 때 심각한 병을 앓았던 필리핀 국적의 환자분이 있었는데, 2차 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치료(수술)를 받아서, 그 분이 이후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통역 봉사를 나오고 계신다"며 "그런 걸 보면 보람도 느끼고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고 대표는 소아 간질환, 간이식 분야에서 국내 권위자다. 주중에는 서울대병원에서 환아들을 치료하고, 매주 일요일에는 라파엘클리닉에서 봉사활동을 펼친다.
그는 "타국에서 힘든 환경에서 일을 하다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종종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많다"며 "이들을 치료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들이)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클리닉을 운영하는 것이 마냥 쉬웠던 것은 아니다. 라파엘클리닉은 대학병원 교수, 개원의 선생님 등이 주축으로 구성돼 진료를 보고 있는데, 올해는 의정사태로 인해 교수들이 주중에 밤샘 당직을 수차례 서게되면서 초반에는 조금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의료진 부족이 어느정도 해소가 되었다"며 "사직 전공의 선생님들이 (라파엘클리닉에)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나 천안모이세분소, 동두천분소는 아직도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이다.
운영비는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고, 후원자들이 보내온 후원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고 대표는 "환자들의 수술을 위해서 2~3차 병원으로 의뢰하는 경우 또한 라파엘클리닉과 협약을 맺은 병원으로 가면 진료비가 많이 나와서 그것 또한 고민"이라고 말했다.
걱정스러운 표정도 잠시, 신년 목표를 묻자 고 대표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그는 "1년에 1~2번 정도는 김포, 파주에서 진료버스를 이용해 이동 건강검진을 운영하고 있는데, 내년에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를 통해서 이동 건강검진을 운영하는 지역을 좀 더 늘리고 싶다"며 새해 바람을 밝혔다.
이어 "또 지방에서 무료 진료소를 운영하고 싶다는 단체가 나타나면 그동안 (라파엘클리닉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고, 저희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싶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무료진료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아직 차별받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다는 뜻 아니겠냐"며 "언젠가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고,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고 모두 건강해져서 '무료진료소'가 필요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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