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위기라는데 '난자 동결' 외면하는 저출산 정책…"난임 예방 가능"

저출산대책, 보조생식술 위주…'가임력 보존' 예방조치 부족
젊은 나이 임신 준비할 환경 조성…"난자 동결 정책 지원 필요"

이정렬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대한생식의학회 국제교류협력위원장)/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올 1분기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0.76명)를 찍고 정부는 '인구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가임력 보존 등 난임 예방 분야가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 정부 정책은 나이가 많아도 얼마든 임신할 수 있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정렬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대한생식의학회 국제교류협력위원장)는 젊은 층의 가임력 보존 부담을 경감하는 등 저출산 지원책을 다양화할 때라고 조언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들어서 난임 시술 지원 횟수를 부부당 21회에서 출산당 25회로 확대했으며, 45세 이상 난임 시술 본인부담률을 50%에서 30%로 인하하는 등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했다. 또 지방자치단체별 난임 시술비 지원사업의 소득·연령 기준도 폐지했다.

복지부는 내년부터 가임력 보존을 위한 생식세포 동결·보존비용을 지원한다. 모든 가임기 남녀를 상대로 필수 가임력 검사비 지원과 함께 난임 시술에 쓰이는 비급여 약제의 건강보험 적용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렇게 정부가 난임 시술 등의 치료 지원을 확대하는 데는 난임이 저출산의 주원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부부 6쌍 중 1쌍이 난임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 증가세가 인구 감소로 이어져, 한국을 포함한 23개국 인구가 2100년까지 지금 인구의 절반으로 줄 것으로 전망된다. 난임은 당사자의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졌다.

임산부의 날을 맞은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차병원에서 열린 '엄마가 행복하고 아기가 축복 받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행사에서 난임 극복 부부를 비롯한 가족들이 아이와 함께 양지윤 작가의 강연을 듣고 있다. 2024.10.1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 현황 통계를 보면 최근 5년간 국내 난임 치료비는 약 2배, 그리고 40세 이상의 환자가 늘고 있다. 이는 혼인 연령 상승, 출산 시기 지연과 맞물려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관측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4세, 여성 31.5세로 전년 대비 각각 0.3세, 0.2세 상승했다. 우선 이정렬 교수는 여성의 초산 연령이 최소한 30대 초반 이전이면 좋고 의학적으로 늦어도 35세 이전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인구는 줄고 있는데, 체외수정 시술(대표적인 난임 치료법) 건수는 계속 늘고 있다. 임신이 안 돼 반복 시술을 받는 환자가 많다"며 "과거에는 40세 이상 환자에게 시술을 권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들이 전체 시술 환자의 40%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우리 정부가 시술 지원에 있어선 세계 최고 수준의 정책을 마련했다면서도 "나이가 많아진 뒤 시술할 경우 임신 가능성은 현저히 감소한다. 더욱 젊은 나이에 시술이 이뤄져야 한다. 젊은 여성의 가임력 보조 같은 예방에도 집중할 때"라고 언급했다.

그는 "난임의 원인 질환도 많아지고 있으며 진단도 늘고 있다. 이제는 가임력을 잘 알고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나빠질 조짐이 보이면 빠르게 조치해야 한다"며 "젊은 층에 의학적 비용을 투자하는 게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가임력 보존 인식 개선 교육, 가임력 파악을 위한 선별 검사에 대한 반복적 지원, 가임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사례의 치료 지원 등이 요구된다. 정부도 중요성을 알고 정책을 고심 중이지만 아직 속도가 더디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20~30대 여성들이 '난자 동결'에 관심을 두는 상황에 대해 "꼭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얼린 건강한 난자가 있느냐, 없느냐 여부는 훗날 임신 가능성에 큰 차이를 만든다. 이런 점을 정책 입안자와 전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젊은 여성들의 난자 동결에 사회적·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 이유를 '저출산 타개'로 들었다. 그는 "반드시 지원돼야 한다. 개인의 동결을 왜 지원하느냐, 일부 사람들이 반감을 품을 수 있어도 출산은 이제 개인의 일이 아닌 만큼 합의할 때가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의료계 목소리를 들으며 노력하고 있고 부처 신설도 거론하는 데 더 나아가 젊은 층을 지원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출산 다음으로 양육을 사회가 함께 분담한다는 생각으로 근무 환경 개선, 보육 지원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그는 "대한민국이 저출산 사회에 접어든 이유는 새로운 세대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행복하지 않은 사회라 그렇다. 우리 사회가 행복해야 그 행복을 물려주고자 출산을 선택한다. 이를 위해 정부, 기업, 의료계, 전 국민이 노력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