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료의 질, 지속가능한 의료체계"

하은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원(중환자의학과 교수)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9.30/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정부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을 근거로 한국의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한국의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적은 건 맞지만, 의료의 질은 오히려 뛰어납니다. 의료의 질, 즉 성적의 지표인 회피 가능 사망률(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하게 치료했을 시 생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사망률·10만명당 100명)과 암 사망률(10만명당 약 170명)이 OECD 평균(회피 가능 사망률 10만명당 126명·암 사망률 10만명당 200명)에 비해 월등합니다. 진료 대기 시간과 수술 대기 시간도 의사 수가 더 많은 나라들보다 훨씬 짧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OECD 평균과 같은 의사 수가 아니라 우수한 의료의 질입니다.

정부는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지금보다 더 증가할 것이므로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며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이미 OECD 평균보다 3배 많이 의료기관을 방문하며 2배 더 오래 입원합니다. 의료수가가 낮아 진료는 짧고, 많이 즉 박리다매식으로 이뤄지고 의료전달체계가 분명하지 않아 질환에 적절한 진료보다 과잉 진료가 일상화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료 시스템과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한국의 의료비는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0년 25조 원이던 의료비는 2022년 209조 원으로 급증했고, 2030년에는 400조 원 이상일 걸로 예상됩니다. 10년 뒤에는 직장인 월급 10분의 1을 건강보험료를 내야 할 거라는 예상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추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을까요? 병원에 적게 가도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의료 시스템을 재검토하고, 정확한 의사 수요를 파악해야 합니다. 현 체계에서는 의사 1만 명을 늘려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방에 집중하고 시스템을 개선한다면 현재 연간 의대 정원인 3000명만으로도 임상의 외에 미래를 위한 의과학자, 기초의학자까지도 육성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의사 수는 이웃의 초고령 사회인 일본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우리와 의사 수가 비슷하지만, 의료비용의 증가를 막기 위해 의대 정원을 줄인다고 합니다.

정부는 '필수의료'의 위기, 지방의료의 소멸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합니다. 의대와 전공의 수련에 수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늘어난 의사들이 과연 지금 의사가 부족한 기피과를 선택할까요? 지금도 매년 약 3000명의 의사가 배출되지만, 기피과를 선택하는 의사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수가가 낮아 병원에 적자를 안기므로 충분한 수의 의사를 고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소수의 의사가 24시간 대기하며 중증 환자를 돌보고 있고, 이를 목격하는 전공의들은 이 분야 선택을 꺼립니다. 정부는 의사 수를 늘리기보다 기피과 의료진의 고용을 위한 별도의 지원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의 구조조정에 10조 원을 투자하며 중증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남습니다. 상급종합병원의 30~40%를 차지하던 경증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현재의 의료 구조에서는 1차 의료와 상급종합병원이 경쟁 관계에 있습니다. 1차 의료기관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환자들은 상급종합병원을 선호합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증 환자 유입을 줄이려면,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진료를 제공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경증 환자가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으면 건강보험 지출은 약 2만 원에 불과하지만, 같은 질병으로 상급종합병원에 가면 12만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경증 환자가 1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고, 중증 환자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연계되는 구조가 확립되면 많은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급종합병원의 구조 전환만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1차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가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면, 상급종합병원의 경증 환자 유입을 줄이는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개혁에서 가장 간과된 부분은 예방입니다. 병원에 가거나 입원해야 하는 상황을 미리 막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국은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건강수명(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은 답보 상태입니다. 예방을 강화하면 건강 악화로 발생하는 막대한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뇨병 관리를 통해 신장질환을 예방하면 투석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예방 시스템은 미비하며, 여기에 대한 투자가 절실합니다.

의료비의 근간을 이루는 건강보험 재원은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 마련한 공공재입니다. 지금과 같은 의료 소비를 유지한다면 건강보험 재정이 곧 고갈됩니다.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 의료계가 합의해 국가가 책임질 의료 영역을 설정하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여야 할 것입니다. 의료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 의사 수를 늘리는 대신, 공공재이며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을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의료체계를 바로잡는 정책을 먼저 시행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수한 의료, 지속 가능한 의료입니다.

하은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 위원(중환자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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