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이 와중에 파업까지 하면…위기의 의료현장
의료현장 "중증도 분류 안된 채 경증 비응급환자 몰려" 토로
보건노조 파업 투표 돌입…간협 "간호사 법적 보호 못 받아"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반년을 넘긴 의정갈등에 병원마다 응급실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피로누적에 따른 의료진 이탈과 경증 비응급 환자 쏠림 등으로 과부하에 걸리면서다.
이런 가운데 병원 노동자들은 전공의 사직으로 업무 부담이 커졌다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예고하고 있고, 병원 간호사들은 법적 보호 없이 전공의 업무에 내몰렸다며 대책을 촉구하는 등 의료현장의 혼란이 악화일로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각지의 병원 응급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408개 응급의료기관 중 응급실 병상을 축소 운영 중인 곳은 2월 21일 6개에서 지난달 31일 24개로 늘어났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3~7월 전원 요청 5201건 중 5.2%(273건)는 이송할 병원을 찾지 못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들은 "응급실은 아직 잘 운영된다고 알려져, 일부 경증 비응급 환자의 방문은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서울에서 환자를 받아달라는 전화가 온다"며 "상급종합병원 역량이 한계에 달해 2차 병원으로 부담이 넘어갔고, 이제 그 병원들도 힘들어한다. 이제 추석 연휴가 제일 위험하다"고 말했다.
외상 환자를 적기에 치료해야 할 외상센터 등도 곤욕을 겪고 있다. 조항주 대한외상학회 이사장(경기북부권역외상센터장·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외상외과 교수)은 "최일선에서 우리는 발만 동동 구른다. 의료진의 사직과 업무 부담 가중이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조항주 이사장은 "여러 교수가 굉장히 지친 상태다. 경남 창원에서 야구공을 얼굴에 맞았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고 의정부까지 온 사례도 있다"며 "권역외상센터가 볼 환자가 아니어도 중증도 분류가 잘 안 된 채 이송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경증 환자의 응급실 내원을 관리하는 등 응급실 과부하 경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인건비와 당직 수당을 계속 지원해 인력을 확보하는 한편,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을 배치한다.
특히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 의료비 본인 부담을 단계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이에 대해 대한응급의학회는 "의대 증원 등 정부의 의료정책 추진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응급의료의 어려움과 국민 불편, 불안이 확산하는 가운데 이런 정책이 발표된 건 아쉬운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학회의 이경원 공보이사(연세대학교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외래 진료로 해결할 수 있는 증상으로도 응급실에 내원하는 이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정당한 비용 지불을 통해 응급실과 인력에 최소한의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의료공백 장기화 속에 병원 내 갈등은 또다른 뇌관이다. 병원 노동자 등이 속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19일부터 조합원 대상 파업 찬반 투표에 돌입했다. 노조는 병원 측에 총액 대비 6.4%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만, 합의가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사 합의를 이룬 사업장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전공의 이탈로 인해 수술, 입원 건수가 줄어들면서 수익이 줄어 노조 측 입장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노조 측은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최소한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고 반박한다.
노조는 노사 간 교섭이 불발되면 찬반 투표 결과에 따라, 오는 28일 파업 전야제를 시작으로 29일부터는 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다만 노조 관계자는 "파업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 유지 인력은 남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병원 간호사들은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 전공의 업무에 내몰렸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이날 오전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현장 문제 간호사 법적 위협 기자회견'을 연다.
협회는 4개월간 이뤄진 '의료공백 위기 대응 간호사의 근무환경 위협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간호사 10명 중 6명은 전공의의 업무를 강요받았고, 교육 시간은 1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이를 거부하면 퇴직까지 요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하되 그 책임은 병원이 지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 사업' 대상 의료기관임에도 참여하지 않는 병원이 60% 이상으로 집계됐다. 협회는 "간호사들이 법적 보호마저 받지 못하는데 전공의 업무에 내몰리고 있다"며 대책을 촉구할 계획이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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