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정부편, 의사편도 아냐…걱정없이 치료받고 싶을 뿐"(종합)
거리로 나선 환자들 "누구도 환자 생명 볼모로 삼으면 안 돼"
"환자 없으면 의사 필요 없고, 국민 없으면 국가 필요 없어"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의정(의료계와 정부)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배려·양보하며 진솔한 대화로 임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국민의 명령입니다."
지난 2월 2000명 의대증원 발표 이후 전공의들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이어지면서 끝이 날 조짐도 보이지 않자, 환자와 보호자 300여명이 거리에 뛰쳐나와 정부와 의료계를 규탄했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연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의료 정상화 재발 방지법'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 "집단휴진 철회하고 의료공백 해소하라""환자없이 의사없다 집단휴진 중단하라""반복되는 의료공백 재발방지 입법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엔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이란 희소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박하은씨(23)와 어머니 김정애씨(68)도 참석했다. 발언대에 선 어머니 김씨는 "'환자가 없으면 의사도 필요 없다. 국민이 죽고 없으면 국가 역시 필요 없다"고 절규했다.
박씨는 3세 지능에 양손은 손가락이 하나씩만 있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다. 김씨는 그런 하은씨를 입양해 남편과 길렀다. 박씨는 폐 상태가 나빠 호흡 곤란 증상이 수시로 온다. 그때마다 대학병원으로 달려가 2~3주씩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번 사태에 김씨는 딸이 치료 못 받고 자신과 이별할까,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도 만나봤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면담도 가졌다. 양측 모두 대화하겠다는 약속은 했으나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답답하면서 간절한 마음이 든 김씨는 삭발까지 감행했다.
김씨는 "의정갈등 해소용으로 환자들 생명이 볼모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우리는 정부 편도 의사 편도 아니다"라며 "그냥 아플 때 아무 걱정 없이 치료받을 환경을 원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곽점순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회장 역시 발언대에 올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지 않았나. 환자를 살리는 의사가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환자 곁을 떠난 의료진은 하루속히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오늘 환자들이 모인 이유는 우리 환자들이 의정 갈등으로 희생돼도 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의사와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걸 명확하게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정부를 향해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인력 수급추계 전문위원회를 신속히 제도화해 내년부터는 지금같은 논란과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원을 결정하고 조정해달라"고 했다.
이날 주최 측은 촉구문을 내고 "환자와 환자 가족 그리고 국민은 무책임한 정부와 무자비한 전공의·의대 교수의 힘겨루기를 지켜보며 분노와 불안, 무기력에 빠졌다"며 "당장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계속되는 피해와 불안을 더는 참을 수 없어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직접 거리에 나섰다"며 "이 날씨에, 기어코 우리를 이 자리에 서게 만든 정부와 전공의·의대교수는,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주최 측과 참석자들은 전공의·의대교수에 무기한 휴진 철회를, 정부에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과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국회에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중단 없이 제공되는 '집단행동 재발 방지법' 입법을 촉구했다.
이들은 "의사사회는 여전히 진료권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그들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며 "아픈 사람에 대한 의료 공급이 중단돼서는 안 되며 불안을 조장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의사들은 의사 집단을 비판하는 환자들을 향해 '정부 탓을 해야지, 왜 의사 탓을 하냐'며 날을 세웠고, 정부는 의대증원 찬성 여론을 앞세워 환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공의들을 밀어붙었다"며 의료계와 정부 모두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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