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후회" 이주일의 경고, 모르나…전자담배에 빠진 청소년들
[금연! 이제 다 바꾸자③] 금연시도율·계획률 매년 '뚝뚝'
"담뱃값 올리고 담배사업법 폐지 등 고강도 규제 불가피"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
지난 2002년 폐암 투병 중 공익광고에 출연해 금연을 당부한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 씨에 온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다. "하루 두 갑씩 피웠다. 정말 후회된다"는 이 씨의 메시지는 실로 강렬했다.
실제 이 공익광고를 전후로 국내 성인 남성 흡연율이 60.9%(2001년)에서 51.7%(2005년)로 4년 만에 9.2%P(포인트) 떨어지는 등 광고 효과는 상당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이런 호소는 통하지 않고 있다. 1년 새 성인 남성 흡연율(2021년 31.3%→2022년 30%)이 고작 1.3% 떨어졌고 금연 시도율과 금연 계획률마저 하락세다. 반면 전자담배 사용률은 지속적으로 오르며 청소년들도 손쉽게 접근한다. 금연 정책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으며 '전자담배 열풍'에 정부와 사회가 손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배 회사 상술에 금연정책 '무용지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내 금연 정책의 시작은 담배 시장이 외국산 담배에 개방된 1988년을 전후해서다. 1986년 담배사업법에 따라 담뱃갑 경고문구 표기를 의무화하고 TV, 라디오 담배 광고를 제한한 게 시작이다. 본격적인 정책은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 제정으로 금연구역 설정 등 흡연을 규제하면서 마련됐다.
1997년 담배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고, 2002년엔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과 함께 담배성분 중 타르·니코틴 성분을 공개했다. 2003년 정부는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서명, 2005년 5월 비준으로 전 세계적인 금연 정책에 동참했다. 담뱃값을 500원 인상했고 금연구역도 대폭 확대했다.
2015년은 '금연 정책 격변기'였다.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리고 대다수 다중이용시설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가운데 금연치료 등 금연지원서비스 사업도 확대했다. 2016년 이후 담뱃갑 경고그림은 암으로 뒤덮인 환자의 적출 장기, 수술 후 모습 등 표현 수위를 높이면서 의무화됐다.
다만 이때부터 현재까지 금연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해마다 떨어지는 금연 시도율과 1개월 내 금연 계획률이 그 증거다. 질병관리청이 19세 이상 일반담배(궐련) 흡연자를 상대로 '최근 1년 동안 담배를 끊으려고 하루 이상 금연을 시도해 본 적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시도한 적 있다'는 응답자는 2022년 46.6%까지 내려왔다.
2016년 57.7%에 비해 11%p 감소한 가운데 현재 일반담배(궐련) 흡연자 중 1개월 내 금연할 계획이 있다는 비율도 2016년 21.2%에서 2022년 14.9%까지 하락했다. 2030년까지 시도율과 계획률을 각각 70%, 25%까지 높이겠다는 정부 목표가 이뤄질지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흡연자에게 적절한 금연 동기가 없다"며 "정책을 전면적으로 되돌아볼 때"라고 꼬집었다.
명승권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대학원장)은 "지금까지 금연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요구, 국민건강증진법 제·개정에 따른 여러 금연정책으로 흡연율이 지속 감소했다"면서도 "하지만 담배회사는 '덜 해로운 담배'라며 전자담배 산업을 육성하고 있어 지금의 금연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대한금연학회장을 지낸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정책이 형편없어 금연 시도율과 계획률이 떨어진다"고 일갈했다. 이어 "효과가 입증된 정책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우선 담뱃값은 올려야 한다. 그래야 금연지원서비스 이용이 증가하고 금연 동기도 생긴다. 소매점 진열·광고 규제, 콘텐츠 흡연 묘사 규제 등 담배를 끊도록 도울 사회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전자담배 열풍 속 금연정책 수년째 '제자리'
금연 동기에 악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인으로 '전자담배'가 꼽힌다. 액상형과 궐련형으로 나뉘는데,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대부분 향기와 맛이 나는 물질을 첨가한 가향담배다. 흡연으로 인한 악취를 줄이고 몰래 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액상형 전자담배로 갈아타는 흡연자들이 늘고 있다. 업체들은 이 점을 노리고 "덜 위해하다. 금연 성공에 좋다"는 등 전방위 마케팅 활동을 강화하는 추세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해악은 위해성과 금연 효과에 대한 논쟁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반담배와 전자담배 혼용 외에도 청소년 흡연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의 액상은 담배로 규정되지 않아 규제 대상이 아닌 데다, 청소년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22년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이 남학생 3.8%, 여학생 2.4%로 집계되는 등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
금연클리닉을 운영해 온 이철민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역시 "진료실에서 느끼기에 전자담배가 출시된 뒤로 흡연자들이 담배를 잘 끊지도 않고, 금연치료 시도자도 줄었다"며 "그간 정부의 담배규제 정책은 '효과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담배 판매량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면 담배 소비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인데 정부는 당분간 금연 정책의 '큰 그림'을 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담배 관련 규제는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그리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흩어져 있어 정부 부처간 합의가 쉽지 않다. 복지부는 지난 2001년 처음으로 정부 주도 '금연종합대책'을 마련한 뒤 최근 10년 이내에 2014년, 2016년, 2019년 세 차례 발표했으나 현재로서는 발표 계획이 없다.
복지부는 사실상 입법 과제만 남아 담배를 규제할 수단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책의 절반 이상은 입법 과제로서 법률 제·개정이 절실하다. 이해관계자가 많아 법률 통과가 쉽지 않다"며 "일단 진열·광고 규제, 금연치료 등 금연지원서비스 같은 개별 과제 추진에 충실할 방침이다. 차후 필요할 때 금연종합대책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보다 강도 높은 담배규제 정책이 마련돼야만 흡연으로 인한 건강 위해를 예방하고 금연 인식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담배 제조와 매매 금지' 필요성도 논의할 때라는 의견도 나온다. 일부 유럽 국가는 특정 출생 연도 이후 세대의 담배 판매와 구입 금지 규제를 내건 바 있다.
명승권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은 "영국에서는 올해 15살인 2009년 출생자부터 평생 담배를 구입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우리도) 담배 제조와 유통을 보호, 양성하는 현행 담배사업법을 폐지하고 마약이나 다름없는 담배에 '담배관리법'을 제정함으로써 담배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안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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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담배? 끊긴 끊어야지." 흡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말이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뻔히 알지만 '난 괜찮겠지'라는 자기 확신에, 참을 수 없는 욕구에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문제는 담배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졌고 흡연자들의 금연 의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금연정책도 이런 세태에 발맞춰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뉴스1이 국내 흡연 실태와 금연 정책을 돌아보고 흡연자를 금연의 길로 인도할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