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인프라, 붕괴 넘어 멸종 수준…서울도 안전하지 않다"

산부인과 4개 단체 기자회견…"진료환경 최악"
"의대생·전공의들이 산부인과 자발적 선택할 수 있게 해야"

오수영 대한주산의학회 학술위원장(왼쪽), 박인양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장, 김영주 모체태아의학회장,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장 등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상연제에서 열린 '붕괴된 출산 인프라, 갈 곳 잃은 임산부, 절규하는 분만 의사들 기자회견'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2024. 6. 4/뉴스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분만 현장이 붕괴 중입니다. 산부인과 의사들을 지원하고 보호해달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산부인과가 어렵다는 것을 10년 이상 이야기했지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출산과 관련해) 서울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장은 4일 서울 중구에 있는 상연지 컨퍼런스룸에서 '붕괴된 출산 인프라, 갈 곳 잃은 임산부, 절규하는 분만 의사들'을 주제로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기자회견에는 대한분만병의원협회를 비롯해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주산의학회,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등 산부인과와 관련한 4개 단체가 모였다.

산부인과 관련 4개 단체는 최근 10년간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미용, 성형, 난임과 같은 분야로 의사들이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의사들이 산부인과를 기피하는 이유로는 분만 사고 등과 관련해 부족한 국가 보상금과 의료 소송의 과다한 배상금에 대한 두려움 등이 꼽혔다. 4개 단체는 2012년 도입되고 지난해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 제46조가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신봉식 협회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을 위한 대안이 아니라 5년, 10년 뒤에도 산부인과 인프라가 지속할 수 있는 대안을 정부와 정치계에 요청하는 것이고 국민에게 지지를 당부하는 것"이라면서 "이번 정부만큼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산부인과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4개 단체는 분만사고에 대한 소송 증가, 배상액 등으로 산부인과 병의원이 지속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2000년 1000여곳이었던 분만의원 수는 현재 200곳으로 줄었다.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분만기관 수는 전국 400여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체는 최소 700곳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4개 단체는 또 워라밸 문제와 인력 부족으로 산부인과가 붕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365일 응급 전화를 받아야 하고 주야간 구분 없이 일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마취과 전문의 부족으로 분만 병의원 운영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근무하는 간호 인력 부족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4개 단체는 분만 인프라 개선을 위한 대안도 제시했다. △분만사고 보상법 개정 △분만 수가 현실화 △산부인과 의사와 관련 인력 양성 지원 △지역별 분만 병의원 수 적정 수준 확보 등이다.

신 협회장은 "산부인과 인프라가 붕괴를 넘어 멸종 수준이라는 실상을 알리고, 신규 의사 등이 끊임없이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우리나라 산부인과 역사상 초유의 기자회견을 준비하게 됐다"면서 "분만 인프라 붕괴를 개선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임박했다. 남아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은 버틸 수 있는 한 최대한 버티면서 분만 현장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