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흥정하듯 뒤집는 일 없을 것" vs "러시안 룰렛 하나"(종합)
정부-의료계, '2000명 증원' 두고 여전히 평행선
국공립대 교수도 "의대증원, 의사 수 확보 관점만 하면 안돼"
- 김태환 기자
(서울=뉴스1) 김태환 기자 = 정부가 대화를 위해 연일 의료계를 찾아 설득에 나섰지만 의료계는 정부가 제시한 '조건없는 대화'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 규모를 조정하기 어려운 입장을 고수하면서 의료계와 갈등의 골이 깊어져 가고 있다. 교수 사직에 이어 이제 전국의 의대생들까지 내달 1일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할 예정으로, 동맹 휴학과 수업 거부 행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의료계 설득 나선 정부…의료계 "조건없는 대화 일고 가치 없어"
한덕수 국무총리는 29일 빅5 병원장을 만나 "정부의 계속되는 노력에도 의료계와 정부 간 대화체가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며 "최일선에서 전공의, 교수들과 함께하고 있는 병원장들이 역할을 해달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5대 병원장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만남에는 박승우 삼성서울병원장,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윤승규 서울성모병원장, 박승일 서울아산병원장, 하종원 세브란스병원장이 참석했다.
이에 앞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대한사립대학병원협회 소속 병원장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병원장님들을 직접 모시게 된 건 집단행동으로 인한 현장 애로사항을 듣고 비상 진료의 어려움을 덜 방안을 좀 더 깊게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며 "허심탄회한 의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지난 19일 전국 국립대병원 병원장들과도 간담회를 가졌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집단행동에 나선 대한의사협회(의협)나 전공의, 의과대학 교수는 만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의료계는 '전면 철회·백지화'로 맞서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대표 단체인 의협은 같은 날 신임 협회장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임현택 의협회장 당선인은 "(정부가 제안한) 조건 없는 대화는 논평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임 당선인은 "국민 불안감과 중증 질환자 등 힘든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정상화하고 싶은 생각"이라면서 "현 상황은 전공의, 의대생, 의대 교수들이 만든 위기가 아니라 정부가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브리핑에서 "의료 개혁의 성패는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며 "다수의 국민이 원하는 의료 개혁을 특정 직역과 흥정하듯 뒤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000만 국민을 뒤로하고 특정 직역에 굴복하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과학적 추계에 기반하고 130회가 넘는 의견수렴을 거친 정책적 결정을 합리적 근거 없이 번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의대 교수 집단 사직과 관련해서는 "교수님들의 집단사직이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전공의 사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며 "조건 없이 정부와의 대화의 자리로 나와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정부가 계속해서 입장을 좁히지 못하면서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는 중이다.
의과대학 교수들의 사직이 시작된 데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대생들이 정부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은 법무 대리인을 통해 오는 4월 1일 정부를 상대로 의대 증원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말까지 소송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집 중이다.
더욱이 의대생들의 동맹 휴학과 수업 거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날까지 40개 의대에 접수된 유효 휴학 신청 건수는 누적 9986건이다. 전국 의대 재학생 1만8793명의 53%에 해당한다.
의협은 더 나아가 총선 낙서운동을 거론하며 "20~30석 당락이 결정될 만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회원들에게도 말씀을 드리는 방식으로 낙선 운동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왜 급히 2000명?…대학 교수들 "최대 상한 정하고 대화 열자"
이날 전국 국공립대학교수회 연합회는 긴급 성명을 통해 의대 증원은 의사 수 확보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면서 "정부가 2000명 증원을 잠정적 최대 수로 하고 교육 현장 준비 상황을 밝히며 협의에 임해 달라"고 했다.
이들은 "의대 증원이 이공계 등 의학 이외 분야 고등 교육과 연구, 학문의 다양성 확보에 부정적 연쇄작용을 미칠 것"이라며 "인재 쏠림 심화로 국가 경쟁력을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임현택 의협회장 당선인도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을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면서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러시안룰렛'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적정 규모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전공의를 대표하는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이날 전공의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개입'을 정부가 의견조회 수준으로 폄훼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현 정부는 전공의의 근로자 신분을 부정하고 업무개시명령과 강제 근로를 합리화하는 것으로 생각돼 심히 개탄스럽다"며 "대전협은 현 사태에 대해 ILO와 소통하며 지속적으로 국제 사회에 알릴 것"이라고 했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의 대화를 촉구했다. 비대위는 성명을 통해 "정부는 국제노동기구의 개입을 존중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현 의료사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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