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적자' 건보 고갈 빨라진다…"수가 조정 필수의료 해답 아냐"
정재훈 고려대의대 교수 "실손보험 본인부담 제한해 수요 조절"
"의대 증원 등 손쉬운 해결책은 미래 세대 부담 전가"
- 조유리 기자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정부 4대 개혁 중 하나인 '의료 개혁'이 좌초할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보건복지부가 지역·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지불혁신추진단'을 신설하고 건강보험 지불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수가 조정'과 같은 미세 조정이 지역·필수 의료를 살리는 해답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18일 정재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기고한 '지속 가능한 우리나라 필수의료의 미래를 위한 정책 설계'(대한내과학회지, Korean Journal of Medicine)에 따르면 국내 의료 정책이 지속 가능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의료 수요를 조절하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정 교수는 "의료 정책은 무제한적 의료 수요를 감당하려 하기보다는 수요 자체를 조절해 후속 세대가 지속 가능한 체계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의과대학 정원 확대나 대규모 재정 투자와 같은 손쉬운 해결책만 제시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보건의료 체계 지속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며 "2022년 GDP 대비 의료 비용 지출은 9.7%로 사상 처음으로 OECD 국가의 평균을 넘어섰으며 이는 지난 20년간 높은 증가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부양을 위한 기초적 인구 구조가 붕괴하고 있고 국민건강보험 재정 수지는 2026년부터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보건복지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두 가지 축인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라는 두 사회보장제도 모두 장기적 재정 전망이 충격적"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2024년 건강보험료율은 직장인 기준 7.09%로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동결됐다. 건강보험제도가 성립한 이래 역대 정부는 건강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지속해서 인상해 왔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아직 인구 구조와 잠재 성장 측면에서 여유가 있을 때 건강보험 재정은 더욱 더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해 정부는 지역 가입자의 건강보험료를 사실상 인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며 "자동차에 대한 건강보험료 부과 폐지와 재산 공제액 인상으로 지역 가입자의 징수액은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결정은 재정 수지를 악화시켜 미래 세대의 부담을 늘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기적 재정 투입과 그에 따른 부작용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의정 갈등 이후 정부는 필수의료 공정 보상 체계 등의 필수의료 수가 인상, 상급 종합병원 구조 개선, 국립대학교 병원 재정 투자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해당 정책들의 장기적 재정 영향은 면밀하게 평가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현재 의사 인력 정책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운다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의대 증원 등 필수의료 인력을 확보한다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래 인구 구조 변화와 부양 인구의 감소, 의료계의 복잡한 직역, 세대 간 갈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책의 부작용은 이익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지난 20년간 건강보험 영역으로만 국한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매년 10% 넘게 진료비 총액이 증가해 왔다. 이러한 시장 성장 속도는 고성장, 저부양 환경에서는 성립할 수 있지만 저성장, 고부양 환경에서는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는다"며 "지금처럼 지속적인 재정 투입과 국민의 의료 수요에 대한 한없는 의료 공급은 지속 불가능 지점을 앞당길 뿐"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는 공급자와 소비자, 관리자가 분리된 특수한 구조인데, 이러한 구조로 국민들은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했다. 이는 높은 경제 성장률과 유리한 인구 구조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과거의 인구 구조는 이제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의료 수요의 급격한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부는 재원 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의료계는 내부적 갈등과 필수의료 종사자의 사회 경제적 처우, 의료 소송의 위험 등으로 지속적인 인력 유출에 시달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 교수는 뉴스1에 "현재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구조상 국민들이 부담 없이 의료 이용을 무한대로 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건보) 재정이 적자가 난 상태에서 모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그 비용에 대한 지급은 감당할 수 없게 된다"며 "불필요한 의료 이용 자체를 줄이는 접근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국민도 의료계도 싫어하는 정책"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실손보험을 손보거나 경제적인 장벽을 높이는 조치는 결국 도덕적 해이와 연관된다. 의료를 많이 이용하는 게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동원하지 않으면 건강보험을 지속 가능할 가능성이 거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손보험이 건강보험 본인부담금까지 보상해 주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지금 일부 실손보험 같은 경우에는 본인 부담금마저도 무력화하는 특성이 있다. 비급여는 이미 사적인 영역이라 정부가 현재 통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환산지수 행위 유형별 차별적용 같은 정책적 접근도 가능하겠지만, 우리나라의 건보 정책은 너무 자잘한 미세 조정의 연속으로 이뤄져 있다. 그 조정으로 거시적 흐름을 잡을 수는 없다"며 "시장 경제를 택하는 상황에서 필수 의료를 제외한 의료에서는 가격 신호를 통해 정책적 접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ur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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