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 협의체 와해’ 예고된 수순…더 강경해지는 의료계

"협의 의미 없어…오늘 회의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
의협, 전공의·의대생 중심 의료계 단일대오 형성 목소리 커질 듯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 이진우 대한의학회장, 이종태 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4차 회의에서 참석하고 있다. 2024.12.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 야당과 의정갈등의 핵심 당사자인 전공의 참여 없이 반쪽으로 출범한 '여여의정 협의체'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돼 와해 수순을 밟고 있다. 수능 성적 발표를 앞두고 진행된 4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의대협회)가 협의체 '탈퇴'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그나마 유의미했던 의료계와 정부, 국회의 소통 창구가 사라지며 의정 갈등 해법은 더 풀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1일 의학회와 의대협회는 이날 오후 여야의정 협의체 4차 회의가 끝난 후 브리핑에서 "더 이상의 협의는 의미가 없으며, 정부와 여당이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지금, 대한의학회와 KAMC는 협의체 참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협의체 탈퇴를 선언했다.

두 단체는 "12월 6일 수능 성적 발표 전까지 정부가 의대정원에 대한 유연한 정책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이것이(오늘 회의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탈퇴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지난주 회의 이후, 마지막까지 정부의 성의 있는 태도 변화를 요청하였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응답도 받지 못했다"며 "의료현실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여당은 해결을 위하여 정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거나, 중재에 나서지 않아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상 초유의 의료시스템의 붕괴가 목전에 이르렀다는 절박함을 호소했지만 우리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고 토로했다.

여야의정 협의체는 지난 9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의료계 15개 단체에 참여를 촉구했고 의학회와 의대협회가 10월 22일 참여를 결정하며 지난 11일 첫발을 뗐다.

의료계 내부의 반대 여론이 거셌지만 두 단체는 "수백, 수천 번의 번민과 숙고 끝에 백척간두에 선 심정으로 뜻을 모았다"며 의대생 휴학 승인과 2025~2026학년도 의대정원 논의 등을 제시하며 협의체에 들어갔다.

이날을 제외한 3번의 협의체 회의에서는 두 단체가 제일 먼저 요구했던 의대생 휴학 승인과 함께 의학 교육 평가·인증에 관한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을 당분간 중지하기로 하는 등 일부 합의점을 찾은 부분도 있었다. 다만 핵심 쟁점이었던 내년도 의대정원에 대한 입장차는 전혀 좁혀지지 못했다.

의학회는 지난 24일 열린 3차 협의체가 끝난 후 4개 조정안과 2개 입장을 정부, 여당에 전달했다. 조정안은 △수시 미충원 인원의 정시 이월 제한 △예비 합격자 규모 축소 △학습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의대 지원 학생에 대한 선발 제한권 부여 △모집 요강 내에서 선발 인원에 대한 자율권 부여 등이다. 2개 입장은 2026학년도 증원 유예와 그 이듬해 이후 정원에 대해서는 합리적 추계기구를 신설해 논의하는 것 등이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4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종태 KAMC 이사장, 이진우 대한의학회장, 국민의힘 이만희, 김성원, 한지아 의원,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2024.12.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쟁점이 된 2025년도 증원은 현재 입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부가 혼란을 초래하는 조치를 취하는 건 수험생과 교육현장에 막대한 영향을 줘서 불가하다"며 또 한 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다만 2026년 정원부터는 의료계가 의사인력추계위원회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하면 정부는 추계위에서 숫자가 구애받지 않고 의료계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도 "입시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였다"며 "당분간 공식적 회의를 중단하고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 휴지기 중에도 의료계를 포함해 참여 당사자 간 대화는 지속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계 단체에 협의체 참여를 적극 요구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경북 국립의대 신설에 목소리를 높여 의료계의 반감은 커졌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의학회와 KAMC가 알리바이용 협의체에서 나올 것을 요청한다"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협의체에 제대로 참석도 하지 않더니 경북 국립의대 신설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비판했다.

한 대표가 '경북 국립의대 신설 지지'를 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2025년 의대 정원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의협 비대위 등 의료계가 의학회와 의대협회의 참여 중단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탈퇴의 명분을 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로써 의료계와 정부, 국회가 한자리에서 의정 갈등 해법을 모색할 창구가 사라진 상황에서 의료계는 전공의와 의대생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보다 강경하게 한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의정 갈등의 핵심인 전공의와 의대생을 아우르지 못해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이 탄핵당한 후, 꾸려진 비대위는 전공의와 의대생의 지지를 받아 탄생했다. 박형욱 위원장 체제의 비대위에는 15명 중 6명, 즉 40%가 전공의와 의대생으로 구성돼 있다. 2일부터 의협 회장 보궐선거 후보자 등록이 예정된 상황에서, 후보자들이 전공의, 의대생을 포함한 의료계 전 직역을 아우르겠다고 공언하는 이유다.

정부와 여당은 "소통창구가 열려있고 의료계와 대화를 지속할 것"이라며 "희망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수능 성적 발표 전까지 5일이 남은 상황에서 의정 갈등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ur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