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지금 전쟁통…김밥 한 줄로 버티며 12시간 철야"

[르포]한양대병원 응급실 하루…'비상진료 가동 원활' 정부 말과는 딴판
강형구 교수 "응급실 기피? 힘드니까…힘 닿는 데까지 환자 볼 것"

강형구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28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전화를 받고있다.2024.8.28/뉴스1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매일 70명 정도가 응급실로 실려 와요. 전화 받고 환자 진료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라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김밥 한 줄로 하루를 버틸 때도 있습니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이 응급실 의료공백을 두고 국정브리핑에서 "여러 문제는 있지만 비상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무색하게, 응급실은 그야말로 전쟁통이었다. 강형구 한양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의 콜폰은 5분 간격으로 쉴 새 없이 울렸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는 최상위 응급실이다. 서울엔 7개 병원 내에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는데, 그중 한양대병원은 서울 동남권 응급환자를 담당하지만 최근에는 지방에서 오는 환자들도 수용하고 있다.

전화를 한 곳은 인근 119 소속 구급대원들로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일부 구급대원들은 이미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거절당했다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강 교수는 약 3분 정도 환자의 상태, 거리 등을 묻고는 수용 여부를 판단했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혈액암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가 걸려 왔다. 고령의 환자는 빅5 대학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녔으나 해당 병원의 응급실 입원이 거부돼, 구급대원을 통해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강 교수는 수용 여부를 묻는 구급 대원들에게 "일단 오라"고 답했다. 환자의 상태를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니 일단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새벽부터 밀려드는 응급환자들을 진료하느라 몇 시간째 화장실도 다녀오지 못한 동료 교수는 모니터에 눈을 고정한 채 "이제는 (새벽에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 퇴원 수속을 진행해야 해 정신이 없다"며 연신 타자를 두드렸다.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12시간의 철야 근무가 기본이다. 간호사들은 8시간씩 3교대 근무를 한다. 의료진 책상 위에는 졸음을 쫓기 위해 1L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 등 카페인 음료가 올려져 있었다.

그때 병실 한 칸에 누워있던 40대 A 씨가 병실에서 나와 의료진에게 말을 걸었다. A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정신과 약물을 60알 넘게 복용했고, 가족들의 신고로 응급실에 오게 됐다. 의료진은 A 씨에게 다가가 "탈수 증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하고, 미음부터 식사를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평일 낮인데도 복통, 고열 등 증상으로 응급실을 방문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전화들이 많았다. 의료진은 경증의 경우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받을 것을 권유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날도 한 30대 여성은 응급실 출입구에서 보안요원의 안내를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인근 의원을 찾으려다가 "역류성 식도염으로 약을 처방받아서 먹었는데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인근 의원이 점심시간이고, 큰 병원에 가는 게 좋다는 생각에 응급실을 방문했다고 했다.

의료진은 경증 환자가 많아지면 위급한 환자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증 환자는 의료진과 의사소통하기도 어렵지만 경증 환자는 진료 순서, 보험 처리, 처치 과정 등에 대한 불만으로 소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생사의 기로에 놓인 환자가 있어도 "내 순서는 언제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응급의료센터 입구에는 '응급실 진료는 접수순이 아니라 중증도 순입니다. 사망 위험이 높은 환자의 치료를 위해 순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문이 게재돼 있었다.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출입문. 2024.8.28/뉴스1

의료진들은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벌어진 이후부터는 중증 환자가 응급실에 몰리는 것 또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양대학교 응급실에서 한 듀티(근무) 마다 출근하는 의사 수는 5명(전문의 1명, 전공의 2명, 인턴 1명)이었지만, 현재는 전문의 2명 만이 근무하고 있다.

강 교수는 "우리(한양대병원)는 전문의가 2명 근무하고 있어서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다른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전문의 1명이 근무를 하기도 한다. 몸이 힘들더라도 혼자서 근무하는 것보다 둘이 근무하면서 중증 환자가 왔을 때 함께 상의할 수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된다"며 "과거에는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열악한 처우 등으로 응급의학과에는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4월부터는 진료 보조(PA) 간호사가 응급실에서 EKG(심전도검사), AGBA(동맥혈가스검사) 등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PA간호사 B 씨는 대다수 PA 간호사가 경력직이고, 숙련도가 높은 편"이라며 "초기에는 교수님이 직접 EKG 등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교통사고 등 전문적인 처치가 필요한 환자를 응급실에서 수용했다고 해도 배후 진료가 어려워진 점도 응급실 운영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일례로 심근경색 환자의 경우 1시간 이내에 심장내과 전문의에게 수술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응급실에서 환자를 수용해 기본적인 처치를 한다고 할지라도 이후 수술을 맡길 심장내과 의사가 없다. 이 때문에 일선 응급실에서 심근경색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마찬가지로 의식이 떨어진 환자가 응급실을 찾았다면 응급의학과 의사는 검사를 통해 의식이 떨어진 원인을 진단하게 된다. 하지만 의식이 저하된 원인은 약물 과다 복용, 빈혈, 저혈당, 뇌손상, 외상 등 수천가지가 넘는다.

이 환자의 의식이 떨어진 이유가 뇌출혈로 판정될 경우 당장 수술을 할 신경외과 의사, 마취과 의사 등이 있어야 하며, 수술 후 입원을 할 수 있는 중환자실과 의료진이 있어야 한다. 만약 이 중 한가지라도 없다면 응급의학과 의사는 그 순간부터 뇌출혈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이 있는지 수 십통의 전화를 걸게 된다. 하지만 최근 의정사태를 겪으면서 병원을 떠난 의료진들이 늘어났고, 전원 또한 쉽지 않게 됐다.

강 교수는 "전문적인 처치가 필요한 환자에게 배후 진료를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중환자가 와도 볼 수 없다는 무력감이 크다"며 "외상 환자의 경우에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다양한 과가 함께 진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의료공백 사태 이후) 여러 과의 교수들이 함께 당직을 서기 힘들어졌고, 필요한 수술을 바로 할 수 없어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강 교수는 정부의 응급실 진찰료 인상대책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고개를 연신 내저었다. 앞서 정부는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250% 인상하고,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 전담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월급을 올려주고 뭐를 한다고 해서 여기(응급실)에 올 사람도 없고, 아무도 일을 안 하려고 그러는데 돈을 주면 일을 할 것처럼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으니 굉장히 웃기는 이야기"라며 "응급실에서 의사들이 관두는 이유는 (응급실 근무가)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 교수가 설명을 이어가는 중에도 구급대원들은 병상으로 환자를 쉴 새 없이 옮겼다. 그 사이 2명에 불과했던 입원환자 수는 6명으로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그는 "오늘 내가 본 환자들이 큰 문제 없이 퇴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며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환자를 계속 볼 것"이라고 말을 남긴 후 자리를 떴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