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는데 무슨 박차?"…전문의 중심병원 계획에 병원들 '갑갑'

하반기 모집 전공의 감감무소식…정부는 구조 전환 속도
병원들 "전문의 조달·인건비 등 현실적인 벽 너무 많아"

3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024.7.3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하반기 전공의 모집 마감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전공의들이 돌아올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자 정부가 전공의 의존도가 낮은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드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당장 오는 9월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인데, 정작 병원들은 정부가 의지를 다질수록 "현실적인 벽이 너무 많다"며 난감해 하고 있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하반기 전공의 모집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도 전공의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전무한 상황이다. 그나마 지원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빅5 병원도 지원이 거의 없는 데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의 경우 0명의 지원자를 기록하면서 정부의 마음은 더욱 급해지는 모양새다.

이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과도한 전공의 의존을 줄일 수 있도록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과 같은 실효적이고 근본적인 개혁 추진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며 "중증·응급·희귀질환의 진료 비중을 높이고 일반병상은 적정 수준으로 감축하는 상급종합병원 운영 혁신을 통해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의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복지부는 이를 위해 △중환자실 및 입원료 수가와 중증수술 수가 인상 △운영 성과에 따른 병원별 인센티브 부여 등을 추진하는 한편 9월 중 시범사업에 빠른 시일 내에 제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2024.7.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전공의가 현장을 떠나면서부터 복지부가 구상하고 있는 청사진은 '전문의 중심병원'이다. 빅5의 경우 전체 의사에서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율이 40% 수준에 이르는 기형적인 구조를 이참에 바꾸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 환자만 받는 의료전달체계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들은 복지부가 의지를 드러낼수록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병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맞지만 지금과 같은 체계에선 사실상 허상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당장 9월부터 시범사업에 돌입하겠다는 데 대해 "말이 있어야 박차를 가하지 달릴 말도 없는데 박차를 가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어쨌든 나라에서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하면서 일반 병상을 15% 줄이고 중증 응급 환자만 받게 하겠다고 하니 발을 맞추긴 해야겠지만 병원 운영상 불가능한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빅5 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계획하는 전문의 중심병원의 단적인 예가 현재 입원 전담 전문의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정부가 이야기하는 전문의는 펠로우(전임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수를 무한대로 늘리는 것도 아니고 직위나 직책으로 보면 펠로우와 교수 사이의 어떤 직위인데, 이 입장에 있는 입원 전담 전문의도 순수하게 입원 전담 역할만 계속해야 하다 보니 인력들이 자꾸 빠져나간다"며 "빅5 병원에 있다는 상징성과 안정성은 있겠지만 성장성과 경제적 이득으로 봤을 땐 손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입원 전담 전문의의 경우 교수보다 처우가 좋지 않다보니 개원가에 취업했을 때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준의 급여를 받게 된다. 그렇다고 교수가 되는 트랙에 서 있지도 않다 보니 인력 유출이 계속돼 병원들도 상시 모집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전문의들에 대한 직위나 직책, 급여 문제 이런 것들이 시스템적으로 다 바뀌어야 하다 보니 1~2년 만에 정착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현실적인 벽이 너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모든 걸 차치하고 전문의를 뽑는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어디선가 일하고 있는 전문의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오게 되면 결국은 지방 의료에 대한 공백은 더 커지게 되고 결국 지금의 악순환들이 반복될 것"이라며 "당연히 정부의 청사진은 보기 좋지만 이 인력들을 어떻게 뽑을 것인지 본질적인 문제에 당면해 있다. 갑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5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4.7.25/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복지부가 롤모델로 삼는 전문의 중심 병원들도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현행 규정상 신규 종합병원은 진료 실적과 의료기관평가인증 등에 따라 전공의를 뽑을 수 있어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종합병원엔 전공의가 없다. 타의에 따른 '전문의 중심 병원'인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전문의 중심 병원이라고 하면 국민들이 좋아하니까 말은 좋지만 지금 그런 구조가 아니다"라며 "지금 전공의 없이 운영하고 있는 병원들은 교수들을 쥐어짜면서 당직을 돌리고 일을 시키는 구조인데 현실과 이상에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교수들이 어쩔 수 없이 갈아넣고 있는데 이걸 잘했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려면 그만큼의 인건비를 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수가 현실에서 보면 병원을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빅5 병원에서도 가장 크게 고심하고 있는 문제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병상 수를 줄이면 그만큼 중증 환자에 대한 보전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월급을 줄 수 있을 만큼 줄 수 있느냐. 어디까지 보상이 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