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무풍지대 '전자담배'…우리의 어린 자녀가 병든다
[금연! 이제 다 바꾸자④] 흡연자 10명 중 4명 '다중흡연'
캐릭터 내세워 청소년 흡연 부추겨…"법적 규제 강화해야"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무니코틴 전자담배'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
길거리에 나서면 흡연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피우고 있는 것은 대부분 국내법 상 '담배'가 아니다. 정부의 담배 규제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신종 담배는 규제와 법망을 피해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흡연자 10명 중 4명은 궐련형 담배와 전자담배를 동시에 피운다. 담배 회사들은 더 많은 흡연자를 만들기 위해 '유사니코틴' 담배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담배회사들은 전자담배에 과일향을 추가하고, 전자담배 기기에 캐릭터를 사용하면서 청소년들에게까지 검은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12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신종 담배인 전자담배는 액상형과 궐련형으로 크게 나뉜다. 이 중 젊은 층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는 것은 액상형 담배이다. 액상형 전자담배 용액은 니코틴과 프로필렌글리콜(PG), 베지터블 글리세린(VG), 액상향료를 배합해서 만든다.
합성니코틴이 들어간 액상형 전자담배는 현행법상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 담배사업법 제2조에 따르면 담배란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해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로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액상형 전자담배는 경고 그림이나 유해 문구 표기 관리 대상도 아니며, 담배소비세 등 부담금 또한 부과되지 않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정부의 지정을 받은 곳에서만 판매가 가능한 담배와는 달리 온라인에서도 판매를 할 수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액상과 기기장치 모두 국내에 얼마나 많은 종류가 유통 및 판매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질병청에서 발간한 담배폐해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소재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 매장 한 곳에서 판매 중인 액상의 종류만 200종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임민경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는 "현재 액상형 전자담배는 법률적 제재나 안전성에 대한 검토 없이 (사람들이) 노출되고 있다"며 "담배류가 아닌 일반 공산품이나 일반 생활용품일 경우 유해성분이 들어있는 것을 검증도 없이 출시할 리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액상형 전자담배=금연보조제?'…"덜 해롭다는 근거 없다"
일부 전자담배 판매업체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금연보조제인 것처럼 홍보하거나, 맛과 향을 첨가해 일반 담배가 아닌 것처럼 판매하고 있다. 담배 업체들은 "궐련형 담배보다 니코틴 등 유해성분 함량이 적어 덜 해롭다" "금연에 도움이 된다"는 등의 마케팅으로 흡연을 유인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담배가 궐련형 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근거는 없다. 대한금연학회는 "장기적인 건강영향과 위해성, 그리고 개인이 아닌 인구 집단 수준의 위험성은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자담배가 더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질병청 담배폐해보고서에 따르면 치주질환 유병률을 담배 비사용자와 비교했을 때 궐련형 담배 흡연자는 2.1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전자담배 사용자는 이보다 더 높은 2.34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궐련형 담배를 끊기 위해 전자담배를 피우던 흡연자들은 종종 궐련형 담배를 끊는 데는 성공하지만 전자담배에는 중독되거나, 궐련형 담배와 전자담배 모두 피우는 '다중 흡연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 30대 직장인 김 모 씨는 "평소에는 궐련형 담배를 피운다"며 "하지만 산을 오를 때는 라이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전자담배를 피운다"고 말했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실내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이 논란이 되었는데, 이처럼 실내에서는 전자담배를 피우고 외부에서는 궐련형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흔하다. 20대 대학원생 정 모 씨는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과의 외부 모임에서는 궐련형 담배를 피운다"며 "하지만 집에 혼자 있거나 실내에서 몰래 흡연할 때는 전자담배를 피운다"고 털어놓았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 2022년 11월 성인(20~69세) 8000명을 대상으로 '전자담배 사용 행태 및 조사 연구'를 진행한 결과 남성 흡연자의 40.3%, 여성 흡연자의 42%가 다중 흡연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중 흡연자 비율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62%),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58%), 일반담배 흡연자(46%) 순으로 높았다.
지난 2022년 국무조정실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흡연자의 79.5%는 궐련을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16.3%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11.3%는 니코틴을 포함한 액상형 전자담배를, 0.4%는 기타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조사됐다.
◇발전하는 전자담배…'합성니코틴' 규제하자 '유사니코틴' 개발
니코틴 함유량 허가 기준인 2%를 초과하는 고농도 액상 제품도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현행 화학물질관리법은 니코틴을 1% 이상 함유한 혼합물은 '유독물질'로 규정하고, 2% 초과한 혼합물을 담배 용도로 판매하려면 유해 화학물질 영업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점에서는 합성니코틴 담배에 니코틴 원액을 추가할 수 있게 만들어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해외 온라인 구매 사이트에서는 니코틴 함량이 5%를 넘는 제품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었다.
합성 니코틴 담배가 활개를 치자, 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담배사업법의 '담배'의 정의에 합성 니코틴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합성니코틴 전자담배 액상은 담배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배회사들은 규제가 시작되자, '무니코틴' 전자담배를 출시했다고 광고하며 흡연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 무니코틴으로 표기된 전자담배들은 니코틴 유사체 물질을 집어넣어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물질로는 '메틸 니코틴'이 있는데, 이는 일반 담배보다 중독성이 5~6배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합성 니코틴도 아직 담배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니코틴, 유사니코틴 등은 논의가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무니코틴으로서 흡연 습관 개선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은 의약외품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그 사용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 제품 별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소년 흡연율 무려 13.8%…"전자담배, 궐련형 담배 사용에 영향"
전자담배는 샤인머스캣, 복숭아, 레몬맛 등 다양한 과일향을 첨가하거나, 전자담배 기기에 캐릭터를 사용하는 등 문턱을 낮추고 있다. 필통 안에 들어 갈 수 있는 향수 모양, 스마트워치, USB, 사탕 등 모양으로 출시돼 언뜻 보면 전자담배인지도 알아차릴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은 유해성 인식 없이 전자담배를 접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자담배는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할 수 없다. 니코틴 여부에 상관없이 담배와 유사한 형태인 피우는 방식의 기능성 제품으로 흡연습관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흡입제류, 전자담배 기기 장치류 등은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전자담배를 구입할 수 있는 경로는 점점 쉬워지고 있다. 이들은 무인점포와 자판기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를 주로 구입한다. 자판기에서 구매할 때 성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본인 확인을 할 수 없어 사실상 무의미하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오픈채팅을 통해 구매하는 사례도 있다. SNS에는 액상형 담배 제조 방법을 설명하는 '액상 김장 영상', 가향 담배의 리뷰 영상 등이 나이 제한 없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청소년들의 액상형 전자 담배 흡연율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청소년(중1~고3) 전자담배 사용률은 2.7%에 그쳤지만 이후 2021년 3.7%, 2022년 4.5%, 2023년 3.3%를 기록하며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의 흡연율은 이보다 높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유빈 원광대학교 산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이 지난 2016~2020년 12~18세 1258명의 소변검사를 통해 흡연율을 분석한 결과 실제 흡연율은 13.8%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같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이 궐련형 담배 사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질병청이 지난 2022년 13~18세 흡연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가향 담배가 흡연을 처음 시도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응답은 67.6%로, '그렇지 않다' 32.4%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대한금연학회장을 지낸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현행법상 청소년의 전자담배를 규제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담배의 기준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을 올리고,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 청소년은 성인보다 담뱃값에 훨씬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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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담배? 끊긴 끊어야지." 흡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말이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뻔히 알지만 '난 괜찮겠지'라는 자기 확신에, 참을 수 없는 욕구에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문제는 담배의 종류는 더욱 다양해졌고 흡연자들의 금연 의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금연정책도 이런 세태에 발맞춰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뉴스1이 국내 흡연 실태와 금연 정책을 돌아보고 흡연자를 금연의 길로 인도할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