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한 법 집행·원칙 고수' 정부, 전공의 사직 허용한 까닭

"현장 의료진 지쳐가고 환자 고통 확산…정책 변경 불가피"
"정부 최선의 출구 전략"…전공의들 "여전히 달라진 것 없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4.6.4/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병원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던 정부가 돌연 사직서를 수리하고 복귀 전공의에게는 의사 면허정지 등의 행정처분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현장에서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사직서 수리 외에는 정부도 퇴로가 없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정부는 4일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내린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을 모두 철회한다는 뜻을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환자와 국민, 그리고 의료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진료 공백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내린 결단"이라며 "오늘부터 각 병원장들은 전공의의 개별 의사를 확인하여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도록 상담, 설득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복귀하는 전공의들의 행정처분 절차도 중단할 방침이다. 더불어 수련기간 조정 등을 통해 필요한 시기에 전문의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전공의들이 복귀 마지노선이 지났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전공의들이 90%에 달하기 때문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30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의 전공의(레지던트) 출근율은 8.4%에 불과했다. 1만 509명 중 879명만 출근을 한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공중보건의사, 군의관 등 500여 명을 투입해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1만 명의 전공의 빈자리를 500여 명의 대체인력으로 막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라 정부로선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이날 브리핑에서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다행히 국민 여러분들께서 많은 협조를 해주셔서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100일이 넘도록 전공의가 현장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현장의 의료진은 지쳐가고 있다"며 "중증질환자의 고통의 커지는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를 위한 정책 변경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도 "상당히 긴 기간,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전공의가 현장에 90% 이상 이탈해서 복귀하고 있지 않고 그 사이 비상진료체계를 하면서 중증·응급환자 진료공백을 메꾸는 노력은 하고 있지만 현장의 의료진이 계속 당직까지 서 가면서 힘들어져 가고 있다"며 "중증 질환자, 암 환자들이 제때 수술을 못 받거나 치료를 못 받는 고통 이런 부분들이 있어 전공의 복귀를 위한 정책의 변경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상 우리가 어떤 큰 일을 겪으면 여러 가지 교훈을 얻는다"며 "정부가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앞으로 의료 쪽에서 집단행동으로 인한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서 교훈으로 삼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결정은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정부로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출구 전략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정부도 뭔가 출구가 있어야 될 거 아니겠느냐. 정부도 계속 갈 수는 없지 않느냐"며 "결국 어쨌든 정부는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고, 딴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지금 전공의 7대 요구안 중에서도 의대 증원에 대한 원점 재검토 빼고는 다 수용하곘다는 입장"이라며 "증원 문제는 도장을 찍었고 의료 개혁을 통해 의견 다 수렴할 테니 돌아오라고 달래면서 유화 제스처로 쓴 게 사직서 수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여전히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정부 발표를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실 이제는 뭐라고 지껄이든 궁금하지도 않다. 사실 이제는 뭐라고 지껄이든 궁금하지도 않다. 전공의들 하루라도 더 착취할 생각밖에 없을 텐데"라며 "달라진 건 없다. 응급실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공의들의 복귀율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개원을 하거나 일반의로 다른 병원에 취업하는 것을 포함해 한 달 내에 20%, 6개월 이내에 70% 이상 복귀할 것이라고 본다"며 "모든 직업인들이 다 비슷할 텐데 계속 이렇게 떠나도 되나 하는 심리적 작용들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복귀해 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