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미복귀 전공의, 수련 포기 해외 진출·동네 의원 취업 모색

美 일부 주 'USMLE' 면제…정부 "추천서 어려워" 일축
동네 미용 의원 찾아 시술 참관 하기도…생활고 등 원인

26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5.26/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이 확정되고 그 절차까지도 모두 마무리된 가운데,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은 여전히 꿈쩍도 않고 있다. 이에 일부 전공의들은 미국 등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전공의 수련을 포기하고 미용 병·의원에서 시술 등을 배우며 진로 변경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지난 2월19일~20일 의대 정원 증원, 필수의료 패키지 등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뒤, 돌보던 환자들을 교수들에게 인계하고 병원을 떠났다. 최근 사법부 결정, 교육부의 의대 모집인원 확정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은 별다른 복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방 소재 대학병원을 사직한 전공의는 "면허정지 처분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정부가 면허정지를) 했더라면, 벌써 3개월 면허정지가 끝나서 복귀하든 말든 결정을 했을텐데 (아무 처분없이) 시간만 지나서 답답하다"며 "사직서 수리는 안되고, 앞으로 먹고는 살아야 하니 다들 제 살길을 찾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일부 전공의들은 해외 취업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에 비해 수련 환경이 좋고, 언어 장벽이 비교적 낮은 미국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정부의 의대 증원과 필수 의료 패키지에 실망해 병원을 떠난 필수의료과 전공의들이 더 나은 수련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며 "최근에 만난 의국 후배들도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은 지역, 필수의료과 의사 부족으로 해외 의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했다. 15개 주에서 외국 의대 졸업생이 USMLE를 보지 않아도 임시 면허증을 발급해주거나, 수련 과정을 일부 면제해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례로 지난해 테네시 주와 일리노이주는 해외 의대 졸업생이 임시 면허증을 발급 받아 2년간 병원에서 근무하면 정식 면허를 발급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앨라배마 주는 해외 의대 졸업생의 경우 전공의 수련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는 법을 제정했다.

국내 의대 졸업생이 미국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USMLE를 통과해야 한다. 시험은 3차까지 있으며, 모든 시험을 통과한 후 레지던트 수련을 받아야 한다. 이때 미국 시민권, 영주권이 없는 국내 의대 졸업생이 미국에서 레지던트를 하기 위해서는 J-1 비자를 받아야 한다.

다만 사직 전공의들이 해외 의사로 취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해외 수련 추천서 발급 지침에 따르면 신청일 기준 1년 전까지 행정처분(경고, 면허정지, 면허취소 등)을 받은 의료인은 추천서 발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 또한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게는 해외수련추천서를 발급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뉴스1에 "정부의 입장은 기존과 같다. 집단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력이 있는 의사들에게는 추천서를 써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이들이 해외 의사로 취업하기 위해서는 병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현재 이들은 수련 과정을 마친 후 군의관으로 입대하는 것을 조건으로 병역을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전공의들은 병원을 사직할 경우 빠른 기간 내 입영해야 한다.

일부 전공의들은 본인이 전공하던 과를 포기하고, 미용 등 분야로 진출하려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피부미용, 성형 분야는 일반의사(GP)도 개원할 수 있을 뿐더러,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고 소득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전공의들은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현재 취업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근무를 희망하는 병원을 찾아가 시술 등을 참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강남구 소재 개원의는 "수련을 포기한 후배들이 (사직 기간동안) 레이저 시술, 리프팅 등을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오고, 몇 번 오기도 했다"며 "의료 행위를 시킬 수 없기 때문에 보통 하루 이틀 참관만 하다가 되돌려 보낸다"고 했다

생활고 또한 전공의들이 다른 진로를 고려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생활고를 겪는 전공의들에게 100만원씩 지원하는 생계지원사업에는 전공의 2900명의 신청자가 몰리기도 했다. 선배 의사와 전공의를 일대일로 연결해 무이자나 저금리로 매달 25만원씩 빌려주는 사업에는 약 390명이 지원했다.

정부는 이날도 전공의들의 복귀를 거듭 호소했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전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정부는 복귀한 전공의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며 "정부를 믿고 용기내어 소속된 병원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집계 결과 지난 23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에는 레지던트 1만501명 중 839명(8.0%)이 출근했다. 대다수 전공의가 소속된 주요 수련병원 100곳은 전공의 9991명 중 675명(6.8%)에 불과했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