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전공의 동료에 마음 찢어져…이대로 돌아갈 순 없지 않나"
의료공백 100일…사직 전공의 3명 인터뷰
"정부, 이젠 자존심 싸움 하는 듯…태도 변화 있다면 복귀 고려"
- 천선휴 기자,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김규빈 기자 = "생활고에 시달리는 전공의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복귀를 안 하겠다고들 해요. 저희는 정부가 사직서를 수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가정의학과 사직 전공의 A 씨)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의료 현장을 떠난 지 29일로 100일째가 되는 날이다. 정부는 이 100일 동안 줄기차게 "돌아오라"는 말을 외쳐댔지만 전공의들은 "공허한 메아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했다.
29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전공의(레지던트) 출근 현황에 따르면 23일 기준 211개 수련병원에 소속된 전공의 1만501명 중 현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전공의는 839명으로 8%에 불과했다. 9662명, 92%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병원을 떠난 이후로 월급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개원이나 다른 병원 취업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실상 의사 면허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100일 동안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전공의들 중엔 가정을 꾸린 가장들도 꽤 있다 보니 당장 기저귀값, 분유값도 조달하지 못할 정도로 생활고를 겪는 전공의들도 많다.
정형외과 사직 전공의 B 씨는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운을 뗐다.
B 씨는 "모은 돈이 있는 친구는 장기로 해외여행을 가거나 쉬면서 보내고 있고, 아닌 친구들은 집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며 지내고 있다"면서 "자녀가 있는 외벌이 친구들은 의국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생계를 이어나가거나 쿠팡맨, 학원 아르바이트 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국 선배들 중엔 매달 100만~200만 원씩 지원을 해주는 선배들도 있다"며 "나도 돈을 까먹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태어나서 이런 시간을 갖는 건 마지막일 테니 휴식하며 건강을 찾고 있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에 따르면 지난 21일까지 의협에서 제공하는 생계 지원금 100만 원을 받기 위해 신청한 전공의만 1646명에 달했다.
이에 더해 의협은 선배 의사가 생계가 어려운 전공의들을 위해 무이자 또는 저금리로 일정 금액을 대출해주는 '선배 의사와의 매칭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의협이 정한 1인당 대출 금액은 25만 원이지만 조건은 변동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에도 전공의들 마음은 굳건하다.
가정의학과 사직 전공의 A 씨는 "생활고를 겪고 있어도 복귀는 하지 않겠다는 분들이 많다"며 "그런 분들 이야기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생활고를 겪는 전공의들보다 현장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전공의는 전문의 시험을 얼마 안 남긴 고연차 전공의들이다.
흉부외과 사직 전공의 C 씨는 "일단 복귀할 생각은 진짜 없다. 실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많지 않다"며 "돌아가는 친구들도 포기하고 들어가는 거라기보단 '전문의 빨리 끝내고 그냥 빨리 튀자'라는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빅5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고연차 전공의들은 교수들과 면담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조금만 버티면 전문의 자격증 시험을 치를 수 있기 때문에 복귀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했다.
일부 고연차를 제외한 대다수의 전공의들은 여전히 돌아갈 마음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그간 정부가 보인 태도들에 마음의 문이 닫혔다고 했다.
B 씨는 "시간이 지나도 변한 게 없으니 복직하지 않을 예정이다. 아쉽긴 해도 아닌 건 아니다"라면서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거나 적어도 전공의들에게 사과라도 한다면 복귀를 할 테지만 행정명령을 거두지 않고 윽박지르고 반강제로 복귀시키려고 하면 복귀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부와 소통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으로 해결되길 바랐는데 정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며 "복귀하려는 전공의들도 정부의 불통 의지를 확인하고 마음을 닫아버렸다. 정부의 태도 변화를 보고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흉부외과 사직 전공의 C 씨는 더 단호했다.
C씨는 "증원을 한다 치자. 그럼 대책이라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 전혀 대책도 없이 정부도 이젠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 같다"며 "전공의들 다 필요없다고 생각했다면 행정명령 내리고 이행하면 될 텐데 그러지도 않고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병원들은 물론 주변 산업까지 망해가고 있는 것 같던데 이렇게까지 해서 대책없는 의대 정원 2000명을 왜 고집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며 "다들 돌아갈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직 전공의들은 아직 이들이 복귀 전제로 내세운 '원점 재검토'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흉부외과 사직 전공의 C 씨는 "아직 대학별 모집요강이 안 나오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정부가 취소하거나 원점 재논의를 한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정부는 그걸 안 하고 있으니 그냥 늘어난 정원 5000명으로 필수의료를 잘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전공의들은 여전히 떠나온 의료 현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진 못하고 있었다.
A 씨는 "일반의의 길도 있었지만 굳이 힘든 전공의 생활을 택한 건 그게 좋았기 때문"이라며 "예전 생활이 그립지만 지금 이대론 갈 마음이 없어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말했다.
C 씨도 "다들 예전처럼 일은 하고 싶어 한다. 힘들어도 다 그거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 아니었겠는가"라며 "근데 이제는 그게 크게 의미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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