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 사직효력 첫날 이탈 움직임 '미미'…환자들 "선은 지켜야"

의개특위 '반쪽짜리' 출범…'정책 거수기' 역할 비판도
빅5 중 4곳 '주1회 휴진'…진료·수술 등 고려해 사직 진행

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제1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회의 결과를 브리핑을 하기 앞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4.4.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김규빈 강승지 김지혜 이기범 김민수 기자 =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특위)가 25일 출범했다. 하지만 의정 갈등 중심에 서 있는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이 끝내 참여하지 않으면서 태생부터 '반쪽짜리'라는 오명을 쓴 데다 나머지 위원들에 대한 구성도 정부 정책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 교수들의 사직이 시작되고 빅5 병원 중 4곳 주1회 휴진에 들어가면서 더 큰 의료 대란이 가시화되고 있다.

노연홍 특위 위원장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특위 첫 회의 상황을 알리며 "대부분의 위원들께서 의료개혁의 성과가 국민과 의료현장에서 체감될 수 있도록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를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중증·필수의료에 대한 보상 강화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도입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등 4개 과제에 대해 상반기 중으로 구체적인 로드맵을 발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위는 노 위원장과 10개 공급자단체, 5개 수요자단체에서 추천한 민간위원 15명과 전문가 5명, 정부위원으로 기획재정부·교육부·법무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금융위 등 6개 부처 기관장이 참여해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의협, 대전협, 대한의학회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첫 회의 참석자가 24명에 그친 것이다.

의협과 대전협, 대한의학회의 불참만이 문제는 아니다. '의료 개혁'의 당사자라고는 보기 힘든 한의사, 약사, 치과의사 단체와 병원장들로 구성된 단체가 의사 단체 대표로 포함돼 있어서다.

또 의료 개혁을 하기 위한 특위의 구성이 건강보험정책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와 보건의료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구성과 매우 유사하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건정심, 보정심 구성원과 너무나 유사하다"며 "산적한 보건의료 문제 해결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논란을 알고 있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특위 브리핑에서 "의협과 대전협은 당사자이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라면서 "특위에 조속히 참여해서 논의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전 실장은 특위 구성이 불합리하다는 의료계 주장에 대해 "(특위는) 사회적 합의체"라며 "(27명 중) 10명이 의료계에서 참석한다. 건정심 등은 3분의 1(이 의료계)인데 지금은 2배로 의료계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전문위도 구성하며 부위원장도 의료계 인사가 된다"고 반박했다.

이에 서울의 한 의과대학 교수는 "한의사, 약사, 치과의사, 소비자단체가 필수의료 현실을 어떻게 알 것이며 전공의 수련환경, 수가 체계 등의 문제를 짚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해관계가 있는 병원장들은 또 왜 포함한 것이냐"며 "정부의 의도가 너무나 보이는 구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5일 경기도 소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사직원을 종합해 제출하기 전 정돈하고 있는 모습. 2024.4.25/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이런 가운데 의대 교수들의 움직임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5일 연세대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30일 하루 외래 진료와 수술을 전면 중단하고 다음 달까지 매주 하루 휴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빅5 병원 중 4곳(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병원)이 일주일에 한 번 외래진료와 수술을 하지 않는다.

교수들의 이 같은 선택은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정신적·신체적 부담이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의대 비대위는 "근무시간, 정신적·신체적 부담, 소진(번아웃)과 스트레스 지각 정도를 볼 때 한계에 도달한 만큼 환자의 안전진료를 담보하고 교수의 진료 역량과 건강 유지를 위해 개별적으로 30일 하루 휴진(외래진료와 수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도 이날 의대 교수들에게 오는 30일 서울대 소속 4개 병원이 전체 휴진한다는 안내문을 보냈다.

삼성서울병원 등을 수련병원으로 두고 있는 성균관대 의대교수 비대위도 전날 주 1회 외래와 시술, 수술 등 진료 없는 날을 휴진일로 정하는 내용이 담긴 '교수 적정 근무 권고안'을 배포 및 시행했다.

서울아산병원 등 울산대 의대교수 비대위는 이날부터 사직하고 다음달 3일부터는 주 1회 수술과 외래 진료 등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계명대 의대교수들과 원광대병원도 '주 1회 셧다운'을 결정하는 등 전국의 대학병원에서 휴진 결정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부터 의대 교수들이 예고한 대로 사직서 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교수들의 줄이탈도 우려된다. 다만 첫날이어서인지 실질적인 사직 움직임이나 동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연세대의대 교수 비대위는 "연대의대 교수(전임, 임상, 진료교수 등)의 과반수가 지난달 25일 의대 학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함에 따라 이날부터 사직 실행 효력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비대위도 사직서를 제출한 지 한 달이 된 이날부터 개인의 선택에 따라 사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비대위 수뇌부 4명은 다음달 1일부터 실질적으로 병원을 떠날 것이라고도 했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도 진료와 수술 예약 상황을 고려해 사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20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국의과 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예정대로 25일부터 사직을 시작하겠다고 못박았었다.

25일 대전에 위치한 종합병원에 의학대학 교수들의 입장을 알리는 '국민 대통령 과 정부 당국자께 드리는 호소문'이 붙어 있다. 2024.4.25/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하지만 아직까지 의료현장의 동요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교수들은 예정된 외래진료, 수술이 마무리되는 대로 병원을 떠날 계획이라고 밝혀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을 이탈하는 교수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한 내과 교수는 "(병원에서) 사직서를 수리해주지 않아 당장 병원을 떠나기가 망설여진다"며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는 반대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나고 싶지만 당장 개업할 형편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업무 과중 때문에 언젠가는 병원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의사들의 병원 이탈이 가시화되면서 환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25일 울산대학교병원 재활의학과 보호자 대기실에서 만난 김수정 씨(63)는 동생의 류머티즘병 재활 치료를 기다리며 "하루라도 재활치료를 받지 않으면 몸이 굳어가는데 차질이 생길까 걱정된다. 진료에 차질이 생기면 근육에도 타격이 커 많이 불안하다"며 "지금까진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지만 내달 예정된 정기 진료도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신장내과 복막투석실 앞에서 만난 보호자 박모 씨(65)도 "아직까진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면서도 "신부전증 때문에 일주일에 2번은 병원을 찾는 입장에서는 사태가 장기화 혹은 커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5세 자폐아, 3세 성조숙증 자녀를 둔 조모 씨(34·여)는 25일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나오며 "그나마 교수님은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둔다는 얘기가 들리니 막막하고 불안하다"며 "제자를 지키겠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적당한 선이 있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췌장 관련 문제로 입원 치료 중인 신경오 씨(67·남)는 "의사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병원과 환자들을 떠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정부와 의료계가 원만히 이야기해서 잘 타결해야지 서로 입장만 고집하면 환자 고통만 커진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