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협의" 유연해진 정부…의료계는 ‘창구 단일화’ 두고 내홍
‘신입생 모집요강 확정 전’까지 협상 여지 남긴 정부
강경파 임현택 “의협 비대위원장 빨리 맡고 싶다”…협상 분위기 찬물
- 천선휴 기자,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강승지 기자 = 정부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그동안 못 박아왔던 '의대 증원 2000명'과 관련해 한층 유화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여전히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통일된 의견을 제시한다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신입생 모집 요강일'을 마지노선으로 언급하며 증원 계획 수정 여지까지 내비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하루 뒤에 있을 총선 결과에 따라 정부가 더 강경하게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일지, 한발 물러서 의료계와 진정성 있는 협의에 나설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에 대해 "의대 정원 문제를 포함해 모든 이슈에 유연한 입장"이라며 "정부는 숫자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견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도 전날(8일)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이미 학교별로 배정을 해서 발표를 했기 때문에 되돌릴 때는 또 다른 혼란도 예상돼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인 건 틀림없다"면서도 "신입생 모집요강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어쨌든 물리적으로 변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입생 모집 요강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물리적으로 2000명 증원 계획 변경이 가능하다며 수정 여지를 남긴 것이다.
박 차관이 말한 신입생 모집 요강 공고의 마지노선은 5월 말이다. 대학이 입학 정원 등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변경할 경우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3조 3항에 따라 4월 말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총 정원 조정을 신청하고, 5월 말까지 대교협 심의를 받아야 한다.
대교협은 이미 각 대학에 5월 말까지 2025학년도 입학전형 모집 요강을 공고할 수 있도록 계획을 4월 말까지 확정해달라고 요청해놓은 상태다. 즉 의대 증원 계획 수정의 마지노선이 5월 말이라는 이야기다.
의료계는 정부의 이 같은 변화에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은 뉴스1에 "(2000명 증원 계획 수정) 여지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수사로 보고 있다"면서 "조건 없는 대화가 성사될 수 있도록 정부는 2000명 증원을 고수하는 것보다 더 전향적인 조치에 나서야 한다. 원점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도 "말이 바뀐 것도 중요하지만 행동도 중요하다"면서 "일단 멈춰놓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의사들은 내부 분열을 봉합하고 의협을 중심으로 소통 창구를 일원화하는 모습이다. 의협 비대위는 총선 직후 의협 비대위, 전의교협, 대전협에 의대생 단체(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까지 참여하는 의료계 합동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예고했다. 의대증원 사태 이후 의대생, 전공의, 의대교수, 개원의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다 모이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 없다"고 밝히면서다.
정부와 담판을 벌일 의사들 단일 소통 창구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합동 기자회견이 예고 하루만에 개최 여부조차 불투명해졌다.
임현택 의협회장 당선인은 하루속히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임 당선인 측은 전날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시국이 더욱 엄중해져만 가고 있으므로 혼선을 정리하고 다원화된 창구를 의협으로 단일화해 조직을 재정비하는 게 14만 의사회원과 의대생들을 위해 가장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임 당선인이 비대위원장의 책임을 맡아 14만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뜻을 담아내는 게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당선인으로서 그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당선인의 임기는 5월 1일부터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강경파인 임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에 서둘러 비대위원장을 맡으려는 배경에는 현 의협 비대위가 정부와의 협상으로 기울어졌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500~1000명 감축'과 정부와의 대화 전제조건으로 '대통령 사과, 복지부 장·차관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한발짝씩 뒤로 물러나며 대화의 물꼬를 트려던 의정간 노력이 또다시 안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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