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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해 보고 싶었다" 정유정을 만든 건[이승환의 노캡]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2023-06-04 06:02 송고 | 2023-06-05 08:29 최종수정
편집자주 신조어 No cap(노캡)은 '진심이야'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캡은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여서 노캡은 '거짓말이 아니다'로도 해석될 수 있겠지요. 칼럼 이름에 걸맞게 진심을 다해 쓰겠습니다.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3.6.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3.6.2/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범죄 심리학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주제가 있다. 유영철·정남규·강호순 같은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성향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다. 사이코패스가 타고난 성향인지, 아니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다.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통합 이론'이다.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후천적인 영향을 함께 받는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이 결여돼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의미한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유무에 관심이 집중된다. 수사기관이 직접 사이코패스 검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 일각에선 "사이코패스 격리 방안을 검토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전체 인구 당 사이코패스 비율은 최대 4%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 최고경영자(CEO) 5명 중 1명 꼴(약 21%)로 사이코패스 특성을 보였다는 호주 본드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도 있다.

여러 가능성과 추측이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이코패스 성향 인물이 모두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합 이론이 시사하는 것처럼 선천적인 사이코패스라도 후천적인 영향으로 반사회적 성향이 억제될 수 있다.
국내에도 번역·출간된 책 '괴물의 심연' 저자 제임스 팰런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학(UC어바인) 교수가 대표적이다.

팰런 교수는 '사이코패스를 연구하는 사이코패스 과학자'로 불린다. '괴물의 심연'은 사이코패스 유전자이자 뇌 신경과학자인 그가 사이코패스의 심리와 근원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팰런 교수는 살인범들의 뇌 구조가 자신의 뇌와 유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한 가지 사실을 마주한다. 자신의 조상 중에 살인자가 많다는 점이다. 심지어 친모를 숨지게 한 존속 살해범도 있었다고 한다.

팰런 교수는 그러나 교도소 대신 상아탑에 자리잡아 존경을 받고 있다. 세 아이의 가장인 그는 많은 친구를 둘 정도로 '친사회적' 성향이다. 어린 시절 온화한 가정에서 사랑 받고 자란 그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환경으로 극복한 사례이다. 

"60대에 시작한 뜻하지 않은 순례를 통해 발견한 것은 5년 전만 해도 내가 믿지 않았던 뭔가다. 태어날 때 자연이 나누어준 형편없는 카드 한 벌을 올바른 양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지금까지 책을 읽었다면 눈치챘겠지만, 나는 결코 천사가 아니다. 하지만 훨씬 더 나쁜 모습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괴물의 심연' 중)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부산 20대 여성' 살해범 정유정(23)의 잔혹함에 우리 사회의 시선이 쏠려 있다. 과외 앱으로 만난 또래 여성을 숨지게 한 후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를 받는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살인해 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저명한 범죄 심리학자는 폐쇄회로(CC) TV 화면을 보고 "(범행 직후 시신을 든 가방을 끄는) 정유정의 발걸음이 굉장히 가볍다"며 '성격장애'를 유추했다. 언론들은 '정유정은 사이코패스일까'라는 관점으로 접근해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정유정이 사이코패스라 해도 그런 성향을 환경적으로 개선할 순 없었던 걸까? 5년간 무직으로 지낸 그의 휴대전화엔 다른 사람과의 통화 내역이나 친구 연락처가 없었다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정씨는 범행 욕구를 극복할 환경을 경험하지 못했다. '사이코패스 유전자' 팰런 교수의 성장 환경과 달랐던 셈이다. 

'정유정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범행을 계획하는 동안 방치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이코패스 괴물을 만드는 '사각지대'에 주목해야 우리 사회는 제2의 정유정을 막을 수 있다.

 이승환 사회부 사건팀장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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