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덕플레이션]② 응원봉·MD상품 '도 넘은 상술'…팬덤도 뿔났다

"오른 만큼 값어치 하나?"…치솟는 가격에 팬들 '불쾌감'
전문가 "터무니 없는 가격은 K팝 저변 좁게 만들 것"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박상휘 기자, 박동해 기자, 이정후 기자 | 2023-06-04 05:30 송고 | 2023-07-06 17:33 최종수정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힘내라 대한민국 2014 드림 콘서트' 현장이 팬들의 열정이 만든 환한 불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힘내라 대한민국 2014 드림 콘서트' 현장이 팬들의 열정이 만든 환한 불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하이브·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는 팬 기만을 멈춰라!"

13인조 K팝 보이그룹 '세븐틴'의 콘서트를 불과 두 달을 앞둔 가운데 지난달 25일 SNS에서는 일명 '캐럿'(세븐틴 공식 팬클럽) 대표의 항의 성명이 퍼졌다. 이들은 세븐틴의 소속사인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와 모기업 하이브에 공식 응원봉 문제를 비롯해 6가지 불만을 제기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K팝 팬들에게 공식 응원봉은 콘서트 필수품이나 다름없다. 90년대에는 팬들이 특정 아이돌을 상징하는 색깔의 풍선을 단체로 같이 들며 결속력을 확인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콘서트장과 연동된 응원봉을 든다. 아이돌의 춤과 동선, 음악에 따라서 실시간으로 응원봉의 색깔이 바뀌며 카드섹션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팬들은 응원봉이 없으면 콘서트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고 느낀다.

보통 응원봉을 한 번 구매한 뒤에는 콘서트에 갈 때마다 여러 차례 쓸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세븐틴 콘서트에서는 새로 출시된 응원봉 '버전3'만 공연장과 연동될 것이라는 말이 나와 팬들의 분노를 샀다. 팬들은 성명에서 "하이브·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이전 응원봉의 중앙제어 능력 상실을 언급하며 버전3의 응원봉을 구매할 것을 압박했다"며 사실상 '강매'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가격 측면에서 새 응원봉 '버전3'는 4만9000원으로 기존의 버전2 응원봉(3만9000원)보다 1만원이 더 비싸다. 또 새 응원봉이 세븐틴의 공식 색깔(로즈쿼츠세레니티)이 아닌 어두운 색으로 출시된 점도 팬들의 불만을 산 대목이다.

세븐틴 공식 응원봉 '버전3'(왼쪽)과 '버전2' (출처: 온라인쇼핑몰)
세븐틴 공식 응원봉 '버전3'(왼쪽)과 '버전2' (출처: 온라인쇼핑몰)

뉴스1과 SNS 인터뷰에 응한 고등학생 팬 A양(17)은 "기존 응원봉에 들어가 있던 세븐틴 공식 색이 빠진 응원봉을 내놓고 팬들이 안 살 것 같으니 기존 응원봉은 앞으로 콘서트에서 연동하지 않겠다고 (팬들의) 말을 막아버렸다"며 "(팬들은) 불도 안 들어오는 응원봉을 갖고 응원할 수도 없고 그냥 사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A양은 "소속사는 이런 문제로 아티스트들이 욕먹어도 공식 의문 하나 내지 않는다"며 "팬들과 아티스트 사이를 갈라놓는 소속사가 무슨 소속사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아 가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하이브 측 관계자는 뉴스1에 "버전3 제품은 연출을 위한 여러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제품이고 버전2와 버전3 제품은 제조사가 상이하고 부품 및 기술도 다르다"며 "연동 과정에서 제품 간 일부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나, 현재 두 버전의 제품을 이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아이돌 이름·사진만 붙여 가격 올리기…"지나친 상술" 지적

응원봉 외에도 아이돌 포토카드가 들어있는 MD상품(일명 '굿즈')이나 아이돌 멤버와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와 관련해서도 팬심을 이용해 지나친 상술이 판을 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K팝 굿즈들은 피규어(아이돌 모습을 본뜬 작은 모형)부터 모자·티셔츠·볼펜·수첩·우산·에코백·텀블러·휴대용선풍기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 아이돌 그룹명이나 사진이 덧붙여 출시된다. 하지만 팬심을 이용해 실용성이 떨어지는 굿즈를 끼워 판다거나 가격을 '뻥튀기'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세븐틴 팬들은 지난달 성명에서 '턱없이 오르는 공식상품의 가격'도 문제 삼았다. 이들은 "하이브엔터테인먼트와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가 합병한 이후부터 단계적으로 많은 종류의 공식상품을 판매하고 가격을 높여왔다"며 "팬들을 위한 앨범인 캐럿반의 가격은 1년 만에 2400원이 올랐다. 일반 앨범 가격은 600원 하향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5일 SNS에 퍼진 세븐틴 팬덤 '캐럿'의 항의 성명 (트위터 갈무리) 
지난달 25일 SNS에 퍼진 세븐틴 팬덤 '캐럿'의 항의 성명 (트위터 갈무리) 

지난달 다른 K팝 아이돌 콘서트장 앞에서 만난 고등학생 B양(16)은 "메모지 같은 건 문구점에도 많이 파는데 (포토카드가 들어있는 것은) 1만2000원 정도"며 "친구들도 '필요 없는데 (포토카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야지' 하는 애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20~2021년에는 방탄소년단(BTS) 굿즈로 출시된 500㎖ 생수 20개입 세트가 2만4000원에 판매됐다. 생수 한 병당 1200원인 셈이다. 판매처에서는 '강원도 속초 청정 해역의 수심 200m 이하에서 추출한 해양 심층수를 담은 프리미엄 생수'라고 홍보했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너무 비싸다"는 반응이 나왔다.  

아이돌과 1대1로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 서비스 '버블'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메시지를 보내는 일부 아티스트들 탓에 "구독료가 아깝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팬들도 있다. '버블'의 1인 기준 월 구독료는 4500원이지만 멤버 수가 많은 아이돌 그룹 팬들은 보통 여러 멤버들을 같이 구독하는 경우가 많고, 할인이 적용된다고 해도 보통 4인 기준 1만5000원 정도로 일반 OTT서비스 구독료와 비슷하다.

◇ 팬들 불만 쌓이는 사이 주요 엔터사 실적은 고공행진

물론 수요공급의 법칙이라는 시장 논리상 K팝 엔터업계가 이같은 영리사업을 벌이는 것을 무작정 막을 수는 없다. 불법도 아닐 뿐더러 최종적으로 지갑을 여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이고 '가격이 비싸다고 해도 팔릴 만 하니까 팔리는 것'이라는 업계 입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한류를 주도하는 K팝 시장이 커질수록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상반기 K팝 주요 엔터사가 호실적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성국 교보증권 선임연구원은 지난 1월9일 발표한 '23년 엔터 전망' 리포트에서 "22~23년 지속되는 고물가로 인한 경기침체로 대부분 업종에서 수익성 저하가 우려되는 와중에도, 국내 엔터사들은 국내 및 일본 지역에서의 콘서트 티켓 가격 인상과 미국 및 기타 해외 지역에서의 콘서트 MG(미니멈 개런티) 상승으로 수익성 방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2023.3.12/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2023.3.12/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하이브는 방탄소년단(BTS)의 공백에도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44.1% 늘어난 4106억원, 영업이익은 41.8% 증가한 525억원을 기록하며 1분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JYP엔터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11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4.1%, 영업이익은 420억원으로 119.3% 증가했다. 시장 기대치를 각각 20.98%, 54.98% 가량 웃돈 성적이다.

주요 엔터사들이 물가 상승분을 콘서트 티켓 가격에 전가하며 매출을 올리고 다양한 기획상품으로 팬덤의 지갑을 여는 데에 열중하는 사이 정작 팬들은 높아진 가격대만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서비스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

작년 9월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몬스타엑스 콘서트에 다녀왔다는 대학생 C씨(22)는 "2층에서 정말 요만큼(손가락 한마디 정도)밖에 안 보였는데 표가 15만4000원이나 하니까 괜히 갔나 싶더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2 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오프라인 음악공연 1회당 소비 가능 금액으로 10대와 20대는 '5~10만원 미만'을 고른 응답률(각 34%, 38%)이 가장 높았다. 음악공연 비관람 이유로 '가격이 비싸서'라고 응답(중복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20대(53.6%)였다. 

자료: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음악산업백서'
자료: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음악산업백서'

◇ "극단적 수익 추구는 자충수될 것…코어팬 배려해야"

팬덤 소비는 고객의 충성도가 높아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는 특성도 있지만 팬덤끼리의 유대감도 강하다. 앞서 언급한 세븐틴 팬덤의 응원봉 불매운동처럼 팬들은 납득할 수 없는 소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단체행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샤이니 팬이라는 대학생 이수인(21)씨는 "얼마 전에 샤이니 태민의 25주년 팬미팅이 있었는데 시야도 안 좋고 수용인원도 적은 킨텍스홀에서 하겠다고 해서 팬들이 한번 총공(온라인에서 집단적으로 항의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며 "보이콧 선언을 하니까 그제야 공연장을 바꿨다. 만약 팬들이 가만히 있었다면 SM이 강행했을텐데 이건 팬들을 돈줄로만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D씨는 "내가 사고자 하는 상품(아이돌)이 귀하고 예쁠수록 소비를 더 기껍게 하고, 적어도 소비하는 만큼은 대우를 받을 수 있길 원한다"며 "팬들은 불가촉천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엔터업계의 급격한 가격 상승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팬덤이 제기하는 불만을 업계가 간과하다 보면 신뢰를 잃고 시장에서 천천히 외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합리적인 소비보다는 팬심에 의지하는 상술이 많이 나오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요즘은 팬덤도 옛날과 달라서 그걸 무조건적으로 다 수용하지 않는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고쳐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도 "가격이 너무 올라가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핵심적 팬층만 남고 일반적 대중은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K팝의 저변이 점점 더 좁아지는, 장기적으로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치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K팝 아이돌을 브랜드로 인식하면 기획사들의 극단적인 수익 추구는 해당 아이돌 브랜드를 급격한 쇠퇴기로 접어들게 할 것"이라며 "크게 수익을 확대하지 못하더라도 코어팬을 배려하고, 충분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콘서트를 통해서 꾸준히 브랜드를 키워가는 노력을 해야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페스타 2023' K-POP 슈퍼라이브 콘서트 2023.4.30/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페스타 2023' K-POP 슈퍼라이브 콘서트 2023.4.30/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hypark@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