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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체감 물가와 괴리 크다고요?…소비자물가 조사 동행해보니

통계조사관, 대형마트·전통시장 발품팔아 열흘 단위 조사
'바스켓 효과' 등은 한계…"체감 반영한 보조 지표 늘려야"

(세종=뉴스1) 손승환 기자 | 2023-05-30 05:55 송고 | 2023-05-30 10:26 최종수정
지난 24일 세종의 한 대형마트에서 통계청 세종사무소 소속 통계조사관이 소고기의 가격을 조사하고 있다. ©뉴스1 손승환 기자
지난 24일 세종의 한 대형마트에서 통계청 세종사무소 소속 통계조사관이 소고기의 가격을 조사하고 있다. ©뉴스1 손승환 기자

"소비자들이 가격이 가장 낮았을 때와 비교하기 때문에 체감 물가가 높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와 소비자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물가 간 괴리가 크다는 말을 들을 땐 마음이 아픕니다. 최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물가를 조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물가 조사를 위해 매달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찾는 통계조사관 정해웅 주무관(43)의 말이다. 통계청은 매달 약 460개의 상품 및 서비스 품목을 대상으로 작성한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한다. 이렇게 발표된 소비자물가는 기초 통계 자료로, 정책 수립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채소는 세 개 무게 평균', '해당 품목 없으면 미출회'…'1+1' 같은 파격 할인가는 반영 안 돼

<뉴스1>은 지난 24일 실제 소비자물가 조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기 위해 정 주무관과 함께 세종에 있는 한 대형마트를 찾았다.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 등의 경우 파트타임 조사원이 맡기도 하지만 물가 조사는 해당 지방 통계청 담당 공무원이 전담한다.

이날은 농축산물의 가격을 조사하는 날이었다. 정 주무관은 많게는 한 달에 세 번 똑같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을 찾는다.
4년6개월째 통계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정 주무관의 손에는 태블릿PC가 들려 있었다. 정해진 품목과 규격에 맞는 상품을 찾아 가격을 입력하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다.

그가 태블릿PC에 설치된 조사 시스템에 가격을 입력하자 열흘 전 대비 증감률이 즉각 화면에 표시됐다. 크기가 균일하지 않은 채소·과일 등은 3개의 평균이 기준치를 충족해야 했다. 예를 들어 7㎏ 이상인 수박이 조사 대상이라면 진열된 수박 중 임의로 뽑은 3개의 평균 무게가 7㎏을 넘어야 하는 식이다.

정 주무관은 "규격이 맞지 않거나 해당 상품이 없는 경우에는 가격을 입력하지 않고 '미출회'한다"며 "이럴 경우 다음 순기(旬期, 열흘) 때 재조사하고 세 번째에도 없으면 지침에 의해 조사 대상 상품을 변경할 수 있다"고 말했다.

'1+1세일'이나 '파격 세일' 등이 진행되는 경우 할인 가격은 반영하지 않는다. 할인 여부는 판매 지점, 구매 시기 등에 따라 다를 수 있어 원가를 입력하는 게 원칙이다.

이날 기자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40개 품목을 조사하는 데는 약 1시간이 소요됐다. 정 주무관은 대형마트 한 곳을 조사하면 평소에는 평균 45~50분이 걸린다고 했다.

지난 24일 세종의 한 대형마트에서 통계청 세종사무소 소속 통계조사관이 물가 조사를 위해 대파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뉴스1 손승환 기자
지난 24일 세종의 한 대형마트에서 통계청 세종사무소 소속 통계조사관이 물가 조사를 위해 대파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뉴스1 손승환 기자

◇'체감 물가와 괴리 커'…"체감 반영한 보조지표 활용해야"


통계청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소비자물가 조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5년 주기로 조사 품목을 변경하고 있으며, 각 품목이 전체 지수에서 차지하는 가중치의 개편 주기는 기존 5년에서 2년 반 간격으로 당겼다"고 설명했다.  

또 원활한 조사를 위해 조사 대상 기관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에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같은 라면이라 하더라도 어떤 상품을 대상으로 조사하는지에 따라 물가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상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지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반영하는지가 통계의 신뢰도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형마트의 경우 공문을 보내 가장 대표성을 띠는 제품이 어떤 것인지 등의 정보를 요청하기도 한다.

정 주무관은 "작은 기업이나 자영업자의 경우 조사에 비협조적인 경우도 많다"며 "이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평소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통계청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 지표를 체감한다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최근 물가를 보면 올해 1월(5.2%) 이후 2월(4.8%), 3월(4.2%), 4월(3.7%) 등으로 상승 폭이 둔화했다. 여전히 3%대의 높은 상승률이긴 해도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7월(6.3%)과 비교하면 상승 폭이 상당 부분 낮아진 것과 상반된 평가다.

오히려 체감 물가가 더욱 가파르게 오르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소비자 체감이 큰 외식 물가와 서비스 물가가 여전히 높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 최근 물가 상승세 둔화는 대부분 석유류 가격 인하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이른바 '바스켓 효과'도 지수 물가와 체감 물가 간의 간극을 벌리는 요인이다. 바스켓 효과란 소비자가 본인이 자주 구매하는 상품의 가격이 오를 때 물가가 올랐다고 생각하는 현상이다. 즉, 소비자마다 구매하는 상품이 각기 다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일종의 통계적 한계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에 소비자물가와 체감 물가 간 간극이 클 경우 정책 수립 과정에서 다른 보조지표를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온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바스켓 효과로 인해 소비자물가와 체감 물가 간 괴리가 발생한다"며 "기술과 문화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통계가 이를 못 따라가는 측면도 있다"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다만 통계는 과거와 비교가 가능해야 하는데 품목을 지나치게 자주 개편하면 통계로서의 가치를 잃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통화 정책을 할 때 CPI(소비자물가지수)를 쓰고 있는데 CPI가 체감 물가를 너무 반영하지 못한다, 이럴 경우 다른 지표를 참고하는 식으로 보조 지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s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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