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기자의눈] 50만원 생계비 대출의 씁쓸한 인기몰이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2023-03-24 09:51 송고
서상혁 금융증권부 기자

기본 50만원, 최대 100만원까지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이 연일 화제다. 상담 예약 첫날인 지난 22일, 서민금융진흥원 홈페이지와 콜센터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몰렸다. 금융당국은 다음 주 현장 상담 가능 인원을 약 6200명으로 배정하고 이번주 예약을 받을 계획이었는데 첫날, 그것도 7시간 만에 모두 마감됐다.

상품이 나오기 전만 해도 "50만원을 대체 누구 코에 붙이라는 것이냐", "정부가 서민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한다"는 등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다. 이제는 대출 한도가 언제 소진될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특히 소액생계비대출을 찾는 이들은 신용도가 낮다는 이유로 제도권 금융회사인 대부업체에서조차 1원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수천%의 고금리를 물리는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손을 잡아준 것이다. 

모처럼 정부의 정책이 시장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비록 50만원이지만 연 15.9%의 높은 금리를 물고서라도 반드시 받겠다는 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건, 결국 그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경기는 좋지 않은데, 금리가 오르면서 돈을 빌리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50만원 대출이라도 감지덕지다.

저신용자의 자금난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분위기다.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긴 터널의 끝이 마침내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금리가 내려가는 건 아니다. 저신용자에게 돈을 대주는 저축은행·카드사·대부업체의 어려움은 지속될 것이고, 저신용자들이 설 자리도 빠르게 없어질 것이다. 분명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50만원이나, 이들의 갈증을 해결하기엔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재작년 최고금리를 내린 게 더 아쉽다. 제로금리였던 2021년에도 최고금리를 내리면 저신용자들이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최고금리 인하 이후 1년간 약 4만여명의 저신용자가 불법사금융에 유입된 것으로 파악됐는데, 그 이후에도 급속도로 기준금리가 오른 만큼 그 규모는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약차주의 자금난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정책금융상품 확충도 중요하나, 결국 '큰 한 방'이 나와야 한다. 정부는 기준금리와 연동하는 법정 최고금리 도입을 추진했지만, 최근 들어 동력이 크게 꺾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금리를 올리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한 일이지만 꾸준한 설득이 필요한 일이다. 저신용자를 불법사금융이라는 수렁에 빠지게 두는 것보다는 제도권에 붙잡아 둬,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더 이익이라는 점을 대중에, 그리고 정치권에 알려야 한다.

이번 소액생계비대출 예약 폭주 사태를 통해 정부는 그간 머리로만 짐작하던 저신용자의 자금 갈증을 몸으로 느꼈다. 대중과 국회를 설득할 귀중한 근거 하나를 찾은 것이다. 이번 사태가 불법사금융 문제의 해결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hyuk@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