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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서 본 안타까운 장면들…더 살릴 수 없었나

수만 인파로 응급조치에 시간 걸려 골든타임 흘려보내…"도착하니 이미 시신 60구"
가까운 순천향대병원에 구급차 몰려 환자 분산 차질…"소생 가능한 중환자부터 이송했었더라면"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2022-10-31 11:49 송고 | 2022-10-31 13:27 최종수정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가 압사 사고로 인해 출동한 소방차와 구급차들로 가득차 있다.  2022.10.3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가 압사 사고로 인해 출동한 소방차와 구급차들로 가득차 있다.  2022.10.30/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사망 154명, 부상 149명'이라는 대형 참사를 빚은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지켜본 의료계는 "이미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장에 달려갔으나 깔린 사람들을 빼내는 데만 긴 시간이 걸렸고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조치에 필요한 '골든타임 4분'은 훌쩍 지났다.

현장에서 가까운 순천향대 서울병원에는 환자들과 사망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다른 병원으로 재이송하는 혼란상이 펼쳐졌다.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았더라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없었는지 안타까움이 터져 나온다.
◇"깔린 사람 빼내는 시간이 상당…골든타임 '4분' 그냥 흘러"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고 직후인 30일 새벽까지 서울·경기 내 14개 재난거점병원 전체인 14개 병원에서 모두 15개 재난의료지원팀(DMAT)이 현장에 출동했다. 서울·경기응급의료지원센터도 현장에 나갔다. 

재난거점병원에는 의사·간호사·응급구조사 등 3~4명으로 구성된 DMAT가 항시 구성돼 있어 재난·사고 등 발생시 즉각 현장에 출동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군중에 의한 압사사고 특성상 아무리 빨리 뛰어들어 구조에 나서도 희생자를 줄이기가 힘들었다. 특히 당시 여전히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 있어 도착한 구급차들이 현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은 탓에 의료진이 장비를 챙겨 걸어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심정지 환자가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발생 후 4분으로 알려져 있다. 심정지가 5~10분 이어지면 조직 속 산소가 급격히 떨어지며 뇌와 장기에 손상이 발생한다. 10분 이상 지나면 심각한 조직 손상으로 인해 효과적인 소생법이 없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근무했던 명지병원 DMAT 팀원과 함께 사고 직후인 30일 새벽 1시 40분 이태원 현장에 도착했다.

신 의원은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장 전문가들, 응급 구조했던 분들 대부분이 '질식에 의한 외상성 심정지가 이미 온 상황이어서 소생 가능성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시 회복시키기가 (힘들어) 너무 안타까웠다"며 의료진 등이 총력을 다해 CPR 등을 실시했지만 대부분 희생자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DMAT 팀으로 현장에 출동했던 이시진 고대안암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도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 갔을 때 누워 있는 시신을 보고 너무 놀랐다"며 이미 시신 50~60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호중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30일 JTBC 인터뷰에서 "몇십 명을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소생 불능한 분들이 근처의 병원으로 다 호송돼 의료진들이 사망 환자를 처리하는 상황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말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서울병원에서 '이태원 대규모 압사 사고' 관련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2.10.3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서울병원에서 '이태원 대규모 압사 사고' 관련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2.10.3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재난에 대한 연습, 준비 부족해…응급의료 체계 보완해야"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웠던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부상자와 사망자가 집중적으로 이송된 상황도 되돌아볼 대목이다. 

순천향대병원에는 사고 직후부터 30일 오전까지 부상자와 사망자 80여명이 이송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꺼번에 구급차들이 몰린 순천향대병원의 의료 대응이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순천향대병원의 응급병상 규모는 20여개에 불과하다.

현장에 출동했던 강원소방 소속 한 구급대원은 "사고현장과 5분 거리에 있는 순천향대병원은 처음부터 많은 환자들과 사망자가 이송돼 안치실에 다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연령대, 성별 등을 분류하고 다른 병원으로 다시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환자 이송을 분산할 컨트롤타워인 국립중앙의료원 내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 제 역할을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인 이형민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30일 대한개원의협의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순천향대 서울병원이 아직 호흡하고 응급조치를 취하면 살아날 우선순위의 중환자를 배정받았어야 한다. 그런데 심정지 환자가 이송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환자 처치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병원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며 차량 등 현장 통제가 제대로 안 돼 중환자 이송이 어려웠던 점도 아쉬워했다.

또한 "재난 상황에서는 누군가가 현장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누가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연습이 부족했고 준비가 부족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재난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의학적 대응을 요하면 최소 보건복지부나 의료인이 지휘할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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