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두박질 친 기시다 지지율에 눈 뜨는 잠룡들…차기 日총리감은? [딥포커스]

다카이치 경안상, 벌써부터 세력 형성하며 총재선거 준비
여론조사 1등은 이시바 시게루…당내서는 '모테기 등판설'

일본 차기 총리 후보로 점쳐지는 자민당 소속 잠룡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모테기 도시미쓰 현 자민당 간사장·고노 다로 디지털상. 2023.11.17/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21.3%

일본 기시다 내각이 지난 2012년 자민당이 정권을 잡은 이래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20%대 저조한 지지율은 한 분기 내내 이어졌다.

일본 언론들은 연이어 퇴진 위기라는 분석을 내놓는 틈을 타 차기 총재 자리를 노리는 자민당 잠룡들은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민당이 일본 정당 중 유일하게 지지율 두 자릿수 이상의 성적표를 유지해 차기 총리도 자민당 출신이 유력한 상황. 과연 당 총재 자리를 거머쥐고 차기 총리 자리에 앉는 이는 누가될 것인가.

◇사람 보는 눈 없는 '감세 안경'에 실망한 日

중의원 조기 해산을 통해 재선까지 시야에 넣고 있던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을 곤두박질치게 한 것은 연이은 관료들의 부정·부패 행위였다.

지난 2022년에도 각종 스캔들로 관료 4명이 낙마했는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도미노 사퇴'가 재현된 것이다.

기시다 내각에서는 지난 3주 동안 차관급 인사 4명의 비리가 연속해서 터졌다. 딸뻘 여성과의 매춘 의혹, 위법성 광고 권유, 세금 체납 및 재산 차압, 성추행 의혹 등 모두 사퇴해 마땅한 사유들이다.

지난 16일 성추행 의혹이 보도돼 수습 중인 미야케 방위 정무관을 제외한 야마다 다로 전 문부과학·부흥 정무관, 가키자와 미토 전 법무 부(副)대신, 간다 겐지 전 재무 부대신 등 3명은 직함을 반납했다.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촬영된 제2차 기시다 재개조 내각 정무관(차관급)으로 임명된 관료들의 단체 사진. (출처 : 일본 총리관저 누리집) 2023.09.13/

앞서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월 개각에서 정무관급 인사에 여성을 단 1명도 기용하지 않아 언론의 질타를 받았는데 여기에 비리까지 더해져 인사 책임에 대한 추궁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아울러 지난 2일 발표한 종합 경제 대책도 유권자의 과반(지지통신 기준)이 호응은 커녕 '감세 안경'이라는 조롱이 나올 정도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내세울 수 있는 성과도 부족한 판국이다.

◇아베의 극우 DNA 물려받은 그가 온다

지난 15일, 일본 국회에서는 '일본의 힘(日本のチカラ)'이라는 정치 연구회가 열렸다.

야마다 히로시, 스기타 미오, 아리무라 하루코 등 아베 없는 아베파(派) 의원 총 13명이 참가해 '사이버 보안 대책' 관련 강의를 들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시다파 의원은 없었다.

연구회의 주도자는 차기 총재선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상이다. 현직 각료가 연구회를 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현재 경제안보담당상이 참의원 선거 종료 후 연설하고 있다. 뒷배경에는 '일본을 지킨다. 미래를 만든다'는 문구가 적혀있 다. 2022.07.10/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이같은 연구회나 의원연맹은 정국을 움직이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앞서 스가 정권 말기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 등이 '반도체 전략추진 의원연맹'을 설립해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다카이치 경안상과 참석자들은 "그저 연구회"라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 중진 의원은 유칸후지에 당 총재 선거를 위한 "친구 만들기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는 2024년 9월로 예정된 당 총재 선거에 후보로 출마하려면 총 20명의 추천이 필요하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비판하며 수정을 요구할 정도로 일본 보수 정치권 중에서도 극우 성향을 보이며 '여자 아베'라는 별명이 붙은 다카이치 경안상은 차기 총재선에 대한 질문에 "싸우겠다"고 사실상 출마를 공언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21년 총재선에서는 소속 파벌 없이도 아베 전 총리를 뒷배 삼아 국회의원 표결에서 선전했다. 기시다 후미오 현직 총리에 이은 2위까지 치고 나갔다.

아사히신문은 "각료가 총리에게 공공연히 도전하는 듯한 움직임에 당내 대부분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다카이치는 차기 총리 후보 5위…1위는?

산케이신문과 FNN이 지난 11~12일에 걸쳐 실시한 합동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후보 1위(15.2%)를 차지한 인물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었다.

2위는 고노 다로 디지털상(11.6%), 3위는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9.7%), 4위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8.8%) 순으로 고노 진영 인물이 1~4위를 독식했다.

다카이치 경안상은 6.2%로 5위를 차지했다. 그는 과거 3차례에 걸친 조사에서도 6%를 유지했다.

기시다 총리의 재선을 선택한 유권자는 2.8%에 그쳐 전달 보다 5%포인트 폭락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자민당 간사장. 2021.11.04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일부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임기 도중 사임할 경우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긴급 등판을 유력시하는 시각도 있다.

당내에서 '포스트 기시다'로 간주되는 모테기 간사장은 여론 조사상에서는 1.9%라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지지율을 보이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에 따라 치러진 2020년 총재선거와 같이 긴급시에는 전국 일제 당원투표가 생략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자민당 전 간사장. 2020.09.12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하지만 교도통신에 따르면 정작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오른 이시바 전 간사장은 "정권의 형편이 나빠지면 '얼굴을 바꾸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고 말해 연구회 등을 통해 세력을 결속하려 한 다카이치 경안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차기 자민당 총재선까지 남은 시간은 약 10개월이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