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총리 속은 모른다…기시다의 '무언 리더십'[딥포커스]

"반드시"라는 말은 일절 하지 않는 기시다, 측근들은 아리송
막판까지 결정은 비밀…아소·모테기 삼두정치에도 균열 조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0일(현지시각)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의 기자회견 연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3.09.11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말하지 않는 기시다"

자민당 내에서는 4일로 취임 2년 차를 맞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를 이렇게 평가한다. 입을 열지 않음으로써 구심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견해와 의심스럽다는 불만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NHK는 정부 및 자민당 내부 관계자들을 취재해 최근 정계에서는 기시다 총리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좀처럼 읽을 수 없는 사람이다"는 이야기가 돈다고 최근 보도했다.

◇확언을 피하는 애매한 화법은 권력 균형 유지하기 위한 수단

이 같은 평이 나오는 이유는 애매한 화법 때문이다. 지난 9월13일 대규모 개각을 단행한 기시다 총리는 공식 발표 전날에서야 인사 당사자들에게 연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발표 전부터 유임이 유력하다고 보도됐던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등도 전날에서야 기시다 총리의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자민당 내 모 파벌 간부는 "총리는 '반드시 하겠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푸념했다.

반면 기시다 총리의 한 측근은 "(기한이) 아슬아슬할 때까지 판단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외부 간섭을 차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이 '기시다식 정치'다"고 분석했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듣는 힘'이 장점이라며 강조해 왔다. 하지만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기시다 총리의 입장을 따져 보면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23년 10월2일 기준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기시다 파벌은 당내 4번째 파벌로 제2 파벌(아소파), 제3 파벌(모테기파)과 손을 잡아야만 안정적인 정권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파벌의 수장을 각각 부총재와 당 간사장으로 기용해 이른바 '삼두(三頭)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제2차 기시다 재개조내각에서도 아소 다로 부총재와 모테기 간사장은 자리를 지켰다.

단 NHK는 "정권의 중심인 세 사람 사이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며 요인 중 하나는 나머지 두 명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기시다 총리의 태도 때문이라고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철저한 비밀 관리…중의원 해산도 묵묵부답?

기시다 총리의 정보 관리 방식에는 "비밀주의"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2월 일본은행(일은) 총재 인사다.

일은 총재는 통상적으로 일은 출신이 맡지만 기시다 총리는 막판에서야 학자 출신인 우에다 가즈오를 깜짝 임명했다. 이례적 인사에 이목이 집중될 것을 우려해 정보가 새지 않도록 주의한 것으로 보인다.

거의 매주 열리는 아소·모테기와의 삼두 회의에서도 고유명사는 일절 입에 올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의원 조기 해산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일관해 온 기시다 총리는 지난 6월 갑자기 "정세를 잘 살펴 판단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아소 부총재, 모테기 간사장과 사전 합의를 거친 낌새는 없었다.

13일 일본 도쿄에서 자민당의 신임 임원들과 기시다 총리가 손을 모으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부치 유코 선거대책위원장과 모리야마 히로시 총무회장, 아소 다로 부총재, 기시다 총리,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 하기우다 고이치 정조회장. 2023.09.13/ ⓒ AFP=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개각 후 중의원 해산설에 다시 한번 불이 붙고 있는 가운데 자민당 소속 의원들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자민당 소속 A의원은 "6월 '해산 바람'이 불 때와 똑같다"고 말했으며 집행부 B 의원은 "'해산이라는 패가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동료의 의심을 살 우려가 있다. 국민들도 해산권을 갖고 논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 관계자는 "당내에서 불만이 있는 것은 총리가 바뀌었다기보다는 내각 지지율 저하 등 정치 정세가 변한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야기와 의견을 잘 듣고 그다음에는 스스로 정한다"는 기존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오는 20일에는 임시 국회가 열린다. 신임 각료들의 자질과 마이넘버 카드 등 정치 현안을 두고 야권의 날카로운 추궁이 예상된다. 경제 정책을 부양하기 위한 보정예산(한국의 추가 경정예산)안도 통과시켜야 한다.

기시다의 무언 리더십은 국회를 뚫고 구심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주위를 혼선에 빠뜨리는 독선이 될 것인가. 기시다의 가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