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英 수도회사, 민영화 이후 주주들 147조원 가져가[통신One]

그리니치 대학, 잉글랜드·웨일스 상하수도 회사 10곳 회계 내역 분석
"자체 자금 거의 투자 않고 고객 돈벌이 취급"

영국 런던의 수도 회사 템스워터의 로고. 2024.06.28/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런던=뉴스1) 조아현 통신원 = 부채 압박에 시달리는 영국의 수도회사들이 인프라 개선을 위해 요금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민영화 시행 이후로 주주들이 인출한 금액이 수백조 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20일(현지시간) 그리니치 대학이 발표한 연구 보고서와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수도회사 10곳의 투자자들은 지난 1989년 상하수도 사업이 민영화된 이후 약 852억 파운드(약 147조5300억원)를 인출한 것으로 추산됐다.

수도 회사들은 각 가정에 공급되는 수도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앞으로 5년 동안 고객 요금을 평균 33% 인상할 계획이다.

이에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그리니치 대학교 공공 서비스 국제 연구 부서(PSIRU)의 방문 교수인 데이비드 홀은 "(영국의 수도회사들이) 자체 자금을 거의 투자하지도 않고 고객을 돈줄(cash cow)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템스워터, 유나이티드 유틸리티스, 세번 트렌트 등 잉글랜드와 웨일스 상위 10개 상하수도 회사의 회계 내역을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회계상으로는 지난 1989년 민영화 이후 2023년까지 최대 기업 주주들이 투자한 금액은 인플레이션을 적용하면 55억 파운드(약 9조5236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같은 기간 동안 배당금을 지급하고 남은 이익으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이익잉여금'은 67억 파운드(약 11조6015억원) 줄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한 총액은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더라도 약 728억 파운드(약 126조590억원)까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BBC는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 회사들은 지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 동안 거의 170억 파운드(약 29조4368억원) 규모에 달하는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지급했다.

이런 배당금 지급 방식으로 인해 지난 12년 동안 잉글랜드와 웨일스 모든 가구의 연평균 수도요금이 69파운드(약 11만9000원)씩 증가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또한 스코틀랜드가 상하수도 서비스 주체를 공기업으로 유지해 온 것을 모범 사례를 언급하고 "스코틀랜드 상하수도공사는 잉글랜드와 비교해 보면 지난 2002년 이후 한 가구당 약 35%를 더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만약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수도 기업이 스코틀랜드 상하수도공사와 같은 비율로 투자했다면 280억 파운드(약 48조4842억원)가 인프라 개선에 투입됐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또한 민영화 이후 지급된 배당금도 2018년까지 총자본 지출의 거의 절반(46%)에 해당하는 570억 파운드(1991~2018년, 약 98조7000억원)에 달하는데 이런 현상은 2021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영화 모델은 상하수도 인프라에 대한 주주들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투자 자금은 주주가 아닌 고객의 요금으로 조달됐고 기업들은 대규모 차입을 통해 막대한 부채와 이자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보고서는 짚었다.

지금 영국의 수도 회사들이 떠안은 부채는 상하수도 시설 투자가 아닌 배당금 지급을 위한 자금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홀 교수는 "민영화가 더 많은 투자금을 가져올 것이라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일"이라며 "실제로는 소비자가 이들 기업의 거의 모든 투자 비용을 지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계 어느 나라도 민간 기업이 지역의 수자원과 위생 시설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영국식 시스템을 채택한 곳이 없다"며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압도적인 다수가 공공 부문을 통해 운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10% 미만의 소수 도시만이 민간 기업에 하청을 줘서 상수도 서비스를 운영하지만 이것도 항상 기간제 계약으로 선출되고 공공기관의 감독을 받는다"며 "아웃소싱에서도 벗어나는 추세고 특히 하수도는 민간에 맡기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 산하 수도기업 규제기관인 오프와트(Ofwat)는 주주들에게 지급된 관련 배당금 수치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오프와트는 BBC 방송에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그와 같은 배당금 총액을 나타내지 않는다"며 "민영화 이후 지급된 배당금 수치는 520억 파운드(약 90조421억원)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업 자체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맞지만 2000억 파운드(약 346조원)가 넘는 인프라 투자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tigeraugen.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