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과 대립' 통가 총리 사임…"나라에 노예제도 아직도 남아있어"
국왕과 갈등 봉합하지 못하고 불신임 투표 직전에 결국 사임
통가 국왕, 민주화 시위 이후 상당 권한 이양했으나 아직도 영향력 막강
- 김지완 기자
(서울=뉴스1) 김지완 기자 = 태평양에 위치한 인구 10만 명의 섬나라 통가의 총리가 국왕과의 대립 끝에 급작스러운 사임을 발표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시아오시 소발레니 총리는 9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사임을 발표하며 "나는 이 땅에 자유가 주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노예제도가 아직도 남아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소발레니 총리는 이어 자신과 갈등을 빚어온 귀족들을 향해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며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우리는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임 발표 전 "통가의 귀족들이 권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고 비공개로 비판했다.
그의 사임 소식은 이날 오후 야당이 주도하는 불신임 투표 직전 발표됐다. 통가 귀족들은 의회 26석 중 9석을 차지하고 있어, 야당의 불신임안에 찬성표를 던진다면 소발레니 총리의 사임은 불가피할 전망이었다. 소발레니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은 지난해 9월에도 부패 혐의 등을 이유로 제출된 적이 있으나 부결됐다.
소발레니 총리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정부 관료로 일하다가 2014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부총리와 교육부 장관 등을 지내고 2021년 총리에 취임했다.
그의 후임자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소발레니 총리의 경쟁자인 아이사케 에케 전 재무부 장관이 유력한 차기 총리 중 한명으로 부상하고 있다.
소발레니 총리는 투포우 6세 국왕과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 3월 투포우 6세는 소발레니를 겸임하던 국방부 장관으로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다. 소발레니 총리는 사임을 거부했지만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투포우 6세에게 사과문을 썼다.
두 사람이 대립한 자세한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소발레니 총리가 물러나게 된 것이다.
한편 1000년 이상의 계보를 가진 통가 국왕은 국가 원수이자 정부수반, 군 통수권자로 절대 권력을 누렸으나 2006년 폭동을 동반한 민주화 시위 이후 2010년 권한의 상당 부분을 의원들로 구성된 내각에 이양했다. 다만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과 의회 해산권, 판사 임명권은 여전히 갖고 있다.
197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통가는 171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6년 폭동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통가는 중국 수출입은행에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억 3000만 달러(약 1866억 원)의 빚을 졌고, 올해부터 상환금이 급증할 예정이었다.
2022년 1월에는 통가의 해저 화산이 폭발해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 폭발은 20세기 발생한 어떤 화산 폭발보다도 강력했다.
gw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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