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 결산] 뚝심으로 지켜낸 벤투의 4년 4개월, 한국축구 틀을 바꿨다
최초로 4년 내내 지휘, 빌드업 축구 이식
카타르 월드컵 끝으로 한국과 동행 마무리
- 이재상 기자
(도하(카타르)=뉴스1) 이재상 기자 = 총 1573일. 57경기에서 35승13무9패. 총 103득점 46실점.
2018년 8월17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이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과의 16강전을 마지막으로 4년 4개월의 동행을 마쳤다.
과정 속에 여러가지 어려움도 있었으나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뚝심으로 자신의 축구 철학을 밀어붙였고, 결국 기존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한국은 6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스타디움 974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1-4로 졌다. 조별리그 H조에서 포르투갈을 꺾는 등 돌풍을 일으켰던 벤투호의 발걸음도 16강에서 멈췄다.
아쉽게 사상 첫 원정 8강 무대를 밟진 못했으나 모두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태극전사들은 카타르 도하에서 많은 감동을 안겼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벤투 감독이 있었다.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자리는 오랫동안 '독이 든 성배'로 불렸다. 성적 부진이 이어지면 경질 또는 자진사퇴 등이 반복된 탓이다.
가장 최근이었던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도 울리 슈틸리케(68·독일)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뒤 '소방수'로 신태용 감독이 급하게 지휘봉을 잡았으나 결국 1승2패의 성적과 함께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아무래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던 대한축구협회는 논의 끝에 2018년 8월 외국인 지도자인 벤투 감독을 선임했다. 무엇보다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팀을 이끈다는 계약 기간이 파격적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벤투 감독이 오랜 시간 팀을 꾸리고 원하는 축구를 한국에서 펼칠 수 있도록 계약 기간을 보장했다.
그리고 그는 부침 속에도 4년의 시간 동안 오롯이 대한민국 선수단을 지휘하며 한국 축구의 틀을 바꿨다.
이전까지 한국은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에서 강팀을 상대로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펼쳤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이다 보니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 맞춰 그보다 더 많이 뛰며 기회를 노리는 경기 운영 방식을 펼쳤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달랐다. 보수적인 선수 선발과 기용에 대한 비판도 있었으나 꿋꿋이 자신이 추구하는 높은 점유율을 통한 '빌드업 축구'를 한국에 이식했다.
주장 손흥민(토트넘)을 중심으로 황희찬(울버햄튼), 이재성(마인츠), 황인범(올림피아코스) 등을 중용하며 패스를 통한 유기적인 공격 축구를 펼쳤다. 전방부터 강한 압박과 무한 스위칭을 통한 유기적인 패스 축구로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냈다.
강팀들을 상대로 빌드업 축구는 통하지 않을 것이란 비판이 쏟아졌지만 벤투 감독은 꿋꿋하게 한국이 4년 간 공들여 준비했던 우리의 축구를 그라운드 위에서 펼쳤다. 태극전사들도 벤투 감독을 절대적으로 믿고 나아갔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을 조별리그 H조에서 1승1무1패(승점 4)의 성적으로 포르투갈(2승1패·승점 6)에 이어 2위로 16강에 올랐다. 무엇보다 우루과이, 포르투갈과 같은 세계 상위 레벨의 팀들을 상대로 두려움 없이, 준비했던 빌드업 축구를 펼친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세계 최강 브라질에게 패하며 벤투호의 여정은 끝이 났으나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성공적이란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했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자 이번 대회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디렉터는 대표팀의 성공 비결로 꿋꿋이 자신의 축구 철학을 지킨 벤투 감독을 꼽았다.
박지성은 "(선수들이) 벤투 감독을 믿고 4년간 준비했다. 벤투 감독 역시 자신의 철학을 무너뜨리지 않고 훈련했다"며 "이전에는 대회 직전 감독을 교체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월드컵을 맞이한 적이 많았다. 이번에는 4년을 차분히 기다리고 감독이 자신의 철학을 유지할 수 있게끔 지켜봐 준 부분이 컸다"고 설명했다.
주장 손흥민도 16강을 마친 뒤 4년 간 함께했던 벤투 감독을 향해 고마움과 함께 존경심을 나타냈다.
벤투 감독과의 여정을 돌아본 그는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확실히 있었다"며 "4년의 시간은 너무나 중요했다. 많은 분들이 의심했으나 우린 감독님의 축구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배운 것을 몸속에 익혔으니 잘 인지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항상 강팀을 만나면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났던 한국이었으나 우리만의 '빌드업 축구'라는 무기로 당당하게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면, 벤투 감독은 2022년 카타르 대회를 통해 한국 축구가 다시 나아갈 큰 동력을 선사했다.
alexe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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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벤투호의 카타르 월드컵 여정이 8강 앞에서 멈췄다. 비록 최강 브라질을 넘지는 못했으나 대회 내내 강호들과 당당히 맞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12년 만에 16강에 진출하는 등 내용과 결과 모두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내일의 희망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박수가 아깝지 않다. 2002년 4강 신화로부터 20년이 지난 2022년. 모처럼 행복하게 즐긴 한국축구의 월드컵 도전기를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