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보다 성장을 꿈꾸는 '우승 단장' 차명석 "LG를 꾸준한 강팀으로"
2018년 10월 부임 후 체질 개선…5년 만에 우승 결실
"아와모리 축하주와 롤렉스 시계 보면서 만감 교차"
- 이상철 기자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LG 트윈스 29년 만에 우승 숙원을 풀었다. 선수단과 프런트, 팬, 모기업이 모두 힘을 모아 거둔 성과다.
정규리그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통합 우승에 성공한 LG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긴 암흑의 터널에 갇혀 있던 '약팀'이었다. 그러나 차근차근 발전해 결국 정상에 올랐는데 그 놀라운 변화에 중심에 차명석(54) 단장이 있었다.
2018년 8위에 머물렀던 LG는 부러운 시선으로 다른 팀이 펼치는 가을야구를 봐야 했다. LG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시즌 동안 3차례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등 다시 암흑기를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차 단장이 2018년 10월 LG 단장으로 선임되면서 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원활한 소통을 통한 성과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 명문구단이 되기 위한 초석을 다지겠다"고 포부를 밝히며 체질 개선을 천명했다.
LG는 차 단장이 부임한 뒤 한 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적이 없다. 2019년과 2020년 정규시즌 4위, 2021년 3위, 2022년 2위 등 한 계단씩 올랐고 올해 결국 1위를 차지하더니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달성했다.
염경엽 LG 감독은 "지난해 말 LG 지휘봉을 잡았을 때 이미 팀은 우승을 할 수 있는 구성을 갖췄다. 난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것"이라며 차 단장이 구축한 틀을 높이 평가했다.
현역 시절 스스로도 LG에서 야구 인생을 불태웠던 차 단장은 누구보다 LG의 우승을 간절히 원했다. 그리고 우승이 확정된 순간에 그는 기쁨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우승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차 단장은 뉴스1과 마주한 자리에서 "우승을 해서 굉장히 기뻤다. 부임 후 보낸 5년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내 꿈은 우승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더 큰 지향점을 품고 있었다.
차 단장은 "한 해 우승하고 끝나는 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포스트시즌에 나가 매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강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5년은 걸릴 것 같다고 판단했는데 정말 그 계획대로 됐다"며 웃었다.
선수, 코치, 해설위원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단장으로서 더욱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이런 평가에 그는 "내 인생에 가장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1년이 지날 때마다 이런 걸 작년에 알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쌓인다. 그래도 과거는 현재를 잘 만들기 위한 반성이기도 하다. 어떤 시절보다도 현재가 만족스럽고, 지금도 성공보다 성장을 꿈꾸고 있다"고 밝혔다.
◇29년 만에 우승의 한을 풀기까지
차 단장은 부임 후 냉철하게 LG를 분석했다. 그의 눈에는 LG가 왜 번번이 포스트시즌 무대조차 오르지 못하는지 이유가 잘 보였다.
차 단장은 "LG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7~8월까지 중위권에서 잘 버티다가 막판에 순위가 떨어지는 것이 반복됐다. 그래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달갑지 않은 수식도 받았다. 심지어 LG는 화합이 안 되고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나약하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차 단장은 "당장 한 시즌을 버틸 수 있는 선수들이 없었다. 그래서 단장이 된 뒤 선수층을 강화하기 위해 2군부터 갈아엎었다. 코치진을 바꿨고 한 달에 한 번씩 자리를 만들어 육성과 지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좋은 팀이 되려면 좋은 지도자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시작해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향상되는 것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LG는 내실을 다져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부족한 포지션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움직여 트레이드, 외부 프리에이전트(FA) 영입 등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강팀이 된 LG는 기어코 정상에 도달했다.
1994년 선수로서 LG의 통합 우승을 경험했던 차 단장에게도 이번 우승은 더욱 각별했다.
차 단장은 "29년 전에는 팀이 워낙 강해 큰 위기조차 없었다. 그때 너무 손쉽게 우승해 '앞으로 몇 년 동안 계속 우승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29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끝에 이룬 우승이고, 암흑기를 거쳐 팀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달성한 우승이다. 29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고 밝혔다.
LG는 지난 13일 안방인 잠실구장에서 우승 시상식을 펼쳤다. 유광점퍼를 입은 LG 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관중석을 가득 메웠고, 선수단과 함께 우승을 기뻐했다.
그 장관이 지금도 새록새록 생각난다는 차 단장은 "팬들께서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웃고 울었다. 응원가를 불러주시고 환호를 보내주시는데 기분이 묘했다. 팬들을 보면서 더 빨리 우승했어야 하는데 싶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차 단장이 미안하게 느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바로 고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다. LG 야구단에 애정이 컸던 구 선대회장은 훗날 우승 축배를 들기 위해 아와모리 소주를 구입했고, 다음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게 선물할 롤렉스 시계를 사오기도 했다. 그러나 LG는 구 선대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우승의 한을 풀었다.
지난 17일 LG의 통합 우승 기념행사에서는 구 선대회장이 남긴 아와모리 축하주와 롤렉스 시계가 공개되기도 했다.
차 단장은 "우승이 결정된 뒤 선대회장님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다. 많은 분들이 선대회장님을 그리워하고 있다"며 "1997년 단목 행사에서 그 시계를 직접 보여주셨던 모습이 생각났다. 또한 아와모리 소주로 우승 축배를 들자고 하셨던 말씀도 생생히 기억났다. (그분을 상징하는 두 물품을 보니까) 선대회장님이 안 계셔서 죄송하고 슬픈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LG 왕조 건설을 향해
올 시즌 KBO리그 최강 팀이 된 LG의 다음 목표는 2연패다. 염 감독과 주장 오지환 등 선수단은 LG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쌍둥이 군단 전성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1년만 반짝하고 미끄러지지 말고 계속 우승권을 유지하는 팀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객관적 전력상 LG는 내년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다. 하지만 KBO리그에서 2연패를 달성한 팀은 2015~2016년 두산 베어스가 마지막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우승 팀이 계속 바뀌고 있는 만큼 LG도 거대한 도전에 맞서야 한다.
이미 경쟁 팀은 스토브리그에서 공격적으로 움직이며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LG는 내부 FA 임찬규, 함덕주, 김민성과 협상, 그리고 고우석의 메이저리그(MLB) 진출 도전 등 산적한 과제가 있다.
차 단장은 "내년엔 다른 팀의 견제가 심할 것이다. 이미 몇몇 팀은 (스토브리그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승을 하는 것보다 수성하는 것이 더 어렵다. 내년에도 팬들이 원하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걱정과 고민도 많지만 감독님과 손발을 잘 맞춰 나가겠다"고 말했다.
결국 핵심은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차 단장은 "국내뿐 아니라 메이저리그만 살펴봐도 최근 2연패를 한 팀이 나오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텐데 그 분석을 하는 중"이라면서 "당장의 우승을 위해 (출혈을 감수하고) 즉시 전력감을 데려오는 팀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팀은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 결국 육성을 통해 팀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강팀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는 좋은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단장은 "무조건 첫 번째는 지도자다. 좋은 코치가 있어야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다. 코치가 선수를 못 키우는 것보다 코치가 잘못 가르쳐서 선수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코치 교육이었던 것이다. 구단이 먼저 좋은 코치를 만들면, 좋은 코치가 좋은 선수를 양성할 수 있는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수 시절 야구를 잘했다고 지도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든 무명 선수 출신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얼마나 공부하고 선수에게 애정을 갖느냐"라고 부연했다.
우승 전력을 최대한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LG는 외부 FA 영입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내부 FA 잔류에 총력을 쏟는 중이다.
차 단장은 "선수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은 대우를 받고 싶겠는가. 알고 있다. 나 역시 임찬규, 함덕주, 김민성에게 잘 대해주고 싶다. 회삿돈을 받아오는 게 힘들지만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계약한 선수들이 100% 만족스럽지 않을지언정 적어도 불만족스럽게 계약하는 일은 안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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