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 불법 중국 이직' 브로커 송치…4조 가치 기술 유출

고용부 미등록 상태로 알선…고액 연봉·주거비 제안
기술 인력들 토사구팽…국회 산자위,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추진

ⓒ News1 DB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국가핵심기술인 삼성전자 반도체 20나노급 D램 공정 자료를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관련, 중국 현지 반도체 업체 청두가오전(CHJS)에 국내 반도체 전문인력을 불법으로 이직 알선한 업체들이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로 컨설팅업체 대표 A 씨(64)를 구속 송치하고, 다른 헤드헌팅업체와 대표 2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3일 밝혔다.

A 씨는 2018년경 고용노동부에 '국외 유료직업소개사업'을 등록하지 않고 국내 반도체 전문인력을 중국 업체 청두가오전에 이직을 알선하는 식으로 인력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국내 반도체업체 엔지니어 출신으로 퇴사 후 국내에서 컨설팅업체를 설립,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들에 접근해 고액 연봉과 주거비, 교통비 지원을 제안하며 상당수를 청두가오전에 이직 알선했다.

A 씨는 청두가오전 설립 초기 단계부터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국내 기술 인력을 청두가오전에 이직 알선하는 국외 유료직업소개업을 병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헤드헌터비로 상당한 대가를 받았다.

경찰은 또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하고 부정 사용한 청두가오전 임직원 등에 대해서도 부정경쟁방지법 및 산업기술보호법 등 위반으로 3명을 구속, 18명을 불구속해 송치했다고 밝혔다.

앞서 삼성전자가 지난 2014년 독자 개발한 20나노급 D램 공정 자료를 청두가오전에 무단 유출한 혐의로 전직 SK 하이닉스 부사장 최진석 씨와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 출신 오 모 씨가 지난 9월 구속 송치됐다.

청두가오전 대표인 최 씨는 중국 청두시로부터 약 4600억 원을 투자받아 운영을 주도했고, 오 씨는 공정설계실장직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오 씨의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공정도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통상 해외 기술 유출 사건은 국내 엔지니어 1~2명이 개별적으로 해외 이직하면서 일어나지만, 이번 사건은 국내 반도체 업체 임원 출신이 직접 중국 지방정부와 합작해 현지에 회사를 차리고 국내 반도체 핵심 인력을 집중적으로 이직시켜 국내 핵심기술로 20나노급 반도체 생산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이에 따라 유출된 기술의 경제적 가치는 약 4조 3000억 원이며, 실제 경제적 효과까지 고려하면 피해는 그 이상으로 평가된다.

청두가오전은 이렇게 영입한 국내 반도체 인력 200여 명과 유출된 국내 기술을 토대로 불과 1년 3개월 만인 2022년 4월 시범 웨이퍼까지 생산할 수 있었다. 다만 경찰의 수사로 인해 반도체 양산 단계에는 진입하지 못하고 공장 운영이 중단됐다.

그 사이 국내에서 중국으로 이직한 기술 인력들은 2~3년만 고용됐다가 사실상 바로 해고돼 토사구팽당한 처지다. 이직 과정에서 약속된 혜택들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특히 기술 유출 사건에서 인력 알선업자에 직업안정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상 기술 인력 브로커 처벌 규정은 없어 현재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논의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산자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경찰은 "통제가 어렵고 규제를 회피하기 용이한 '인력 유출' 방식으로 우리 기술이 유출되고 있는 현실에서, 보다 엄정한 법 개정을 통해 사회적 경종을 울릴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불법 헤드헌팅업체의 영업 실태가 확인된 만큼 향후 기업 대상 예방 교육 활동을 확대하고, 전문 수사요원들로 국가 핵심기술 등에 대한 첩보 수집과 단속 활동을 강도 높게 이어나갈 방침이다.

hy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