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3층5호 "저녁 7시 실내온도 33.4도…찬물 샤워도 사치"[극한체험]

좁은 공간 탓에 선풍기도 '벽걸이용만'…건물 못버텨 '에어컨' 불가능
열기 식을 때까지 거리·공원에 있을 수밖에…'에너지바우처' 역부족

3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머무른 방. 햇살이 들어오면 방 안 전체가 빠르게 달궈진다. 2023.8.3/뉴스1 ⓒ News1 장성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장성희 기자 = # 폭염은 사회적 재난이다. 누구에게나 닥쳐온다는 점에서 재난이지만, 피해 크기와 회복 속도는 공평하지 않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미국에선 허리케인 등 무시무시한 자연재해를 제치고 폭염이 기상 관련 사망 원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한국 역시 폭염 안전지대는 아니다. 위험의 그림자는 나이가 많을수록, 야외 노출이 많을수록 짙게 드리운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감시체계 집계에 따르면 올해 온열질환자 10명 중 3명(30.9%)은 65세 이상의 노인이었다. 이들 질환은 오후 3시~4시 사이(11.4%) 실외 작업장(30.7%)에서 발생했다.

쪽방촌은 노인과 실외의 교차점이다. 교차 지점이 늘어날수록 이들은 위험에 취약해진다. 여름이 다가오면 신문과 방송에서 유독 많이 언급되는 이유다. 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는 건강 이상자가 많아 온열질환 이후 회복해도 후유증이 깊다. 1인가구가 대부분이라 위험 시 대처능력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겐 자동문을 밀기만 하면 사라지는 열과 더위가 이들에겐 피할 수 없는 일상이다. 관용표현처럼 사용되던 '살인 더위'가 이들에겐 현실인 셈이다. 1박2일 쪽방촌 더위 체험기는 '또다른 현실'에 발을 디뎌보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3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공터. 2023.8.3/뉴스1 ⓒ News1 장성희 기자

◇24시간 '찜통더위' 동자동…선풍기에선 더운 바람만 솔솔

지난 3일 오후 1시 동자동 쪽방촌을 찾았다. 낮 최고기온이 38도에 육박해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발효된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역 4호선 11번 출구를 나와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걷는데 땀이 비오듯 흘렀다.

날이 더우니 전등 하나 없는 시멘트 복도도 숨이 훅훅 막혔다. 집주인을 따라 정강이 높이만 한 계단 위를 오르자 유성 매직으로 삐딱하게 쓴 '3층 5호'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하루 신세를 질 방이다.

"깔끔하지? 이 건물 5개 방 중 가장 좋은 방이야."

집주인의 안내를 받고 방 한쪽에 짐을 풀었다. 냉장고와 책상 겸 옷장, 한 발 길이의 앉은상을 넣으니 딱 들어맞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은 그늘진 곳 하나 없이 방 곳곳을 고루 비추고 있었다.

이미 달궈진 벽과 바닥에 앉으니 들어선 지 5분도 되지 않아 바닥과 접촉한 피부가 따끔거렸다. 동자동에 오기 전 구매한 온도계는 오후 3시 기준 3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사우나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밖으로 나가는구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간단한 소지품만 챙기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 나무 그늘 곳곳 바위에 앉아있던 주민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나와 내리막길을 내려가다보면 '새꿈 어린이공원' 공터와 서울역 11번 출구 앞 도로가 차례로 나온다. 해가 떠 있을 때만 해도 서넛에서 불과했던 동자동 주민들은 오후 8시쯤 되니 20명 가까이 불어났다. 해가 지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때문이다.

3일 오후 10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인근에서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야외에 모여 있다.2023.8.3/뉴스1 ⓒ News1 장성희 기자

동네 주민들은 박스 폐지를 펼치고 앉아 멍하니 허공을 보거나 수다를 떨며 플라스틱 커피컵에 담긴 물을 마셨다.

"밤에도 방은 더워서 못 들어가. 모기도 많잖아."

이곳 주민인 조모씨(72)의 말이다. 그는 오후 6~7시쯤 저녁을 먹은 이후엔 늘 이곳 공터에 앉아 두세시간 정도 바람을 쐰다. 그에게 집은 몸을 누일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선풍기를 틀어도 무더운 바람만 나와 잠을 잘 때를 빼곤 늘 밖에 앉아있다고 한다.

바람이 부는데 덥다는 건 어떤 느낌인 걸까. 소지품을 가지러 방에 들어간 김에 창문 옆 걸이식 선풍기를 작동시켜봤다.

공기가 날개와 함께 돌며 내부 순환은 되지만 열기가 문제였다. 낮 동안 달궈진 바닥과 냉장고 등 전기제품에서 내뿜는 열기 탓에 선풍기를 켠 지 10분이 지났지만 기온은 33.4도 그대로다.

반면 밤바람이 부는 외부는 28도를 기록했다. 기온별 옷차림을 검색해보니, 5도가 넘는 기온차면 긴팔 셔츠 대신 민소매, 도톰한 긴바지 대신 반바지와 치마로 갈아입도록 권장하고 있었다.

쪽방촌 사람들 입장에선 외출만로도 옷 한겹을 벗어던지는 효과를 얻는 셈이다. 굳이 방 안에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더운 바람조차 사치인 '쪽방'도 곳곳…10곳 중 8곳은 누울자리만 겨우

동자동에서 선풍기가 인기가 없는 건 단순히 더운 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쪽'방이라는 이름답게 선풍기 하나 세워 둘 공간이 없는 것도 문제다.

"짐이 많으니까 공간이 좁잖아. 전기세도 부담되고."

동자동 인근에 위치한 엘림 교회. 3년째 일·화·목요일마다 저녁 배식 봉사를 진행 중이다. 목사 윤씨는 선풍기의 더운 바람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손을 내저으며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고 말했다. 더운 바람조차 맞을 상황이 안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윤씨는 "교회 봉사활동의 하나로 선풍기 30개 신청을 받았는데 그중 9명만 손을 들었다"며 "벽걸이 대신 스탠딩으로만 신청을 받았는데 그 정도 크기마저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방문이 열려있는 쪽방 10곳 정도를 살펴본 결과, 수납공간 없이 물건을 쌓아둔 채 누울 자리만 겨우 마련한 방이 8곳 정도였다. 나머지 방도 누운 곳 옆 여백이 조금 있을뿐 스탠딩 선풍기를 놓기엔 무리였다.

3일 오후 10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방 온도. 해가 졌지만 방 안 온도는 가장 무덥던 오후 3시에서 멈춰 있다.2023.8.3/뉴스1 ⓒ News1 장성희 기자

◇변압기가 못 버텨서, 집주인이 싫어해서…'그림의 떡' 에어컨

올 상반기의 화제 중 하나였던 '전기세 폭탄' 역시 동자동을 피해가지 못했다. 주민들은 '요금 폭탄'으로 난색을 표할 집주인을 걱정했고 주인들은 낡을 대로 낡은 집이 에어컨을 버티지 못할까 우려했다.

에너지 바우처 등 지원책 이야기를 꺼내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에너지 바우처는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 등 에너지 취약계층의 냉난방 부담을 낮추기 위해 일정 금액을 쿠폰처럼 지급해 주는 정책이다.

하지만 바우처 한도가 여름을 건강히 나기엔 충분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부에 따르면 냉방비를 위한 에너지 바우처는 가구당 7~9월 3개월간 총 4만3000원이 지급된다. 한달에 1만5000원이 좀 안 되게 지원되는 셈이다.

10년째 쪽방촌에서 생활 중이라는 70대 안모씨는 "방마다 에어컨을 틀면 좋아할 집주인이 어딨냐"면서도 "설령 튼다고 쳐도 폭염이 하루이틀도 아닌데 집주인이랑 함께 쓰면 한도까지 금방"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변압기가 감당을 못하더라고. 2만~3만원을 더 부담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뽀족한 수가 없는 건 집주인들도 마찬가지다. 305호를 흔쾌히 빌려준 집주인 최씨는 에어컨 설치 의향을 묻자 난감한 표정으로 건물이 약해 본인도 선풍기만 쓴다고 했다.

설령 에어컨을 설치해도 늘어나는 방세를 좋아하는 세입자는 없다고 덧붙였다. 기존 월세가 18만~20만원이라면 전기요금 등을 포함한 에어컨 사용료는 월 2만~3만원은 받아야 한단다.

3일 오후 10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내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복도가 좁다. 2023.8.3/뉴스1 ⓒ News1 장성희 기자

◇시원한 '등목'이라도 해볼까 했지만…좁은 공간에 '고양이 세수'만찬물 샤워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오전 4시45분. 불가마같은 열기에 땀을 쏟으며 잠에서 깼다. 오전 1시30분에 선잠이 든 이후 1시간마다 더위에 눈을 떴으니, 벌써 4번째 기상이다.

열기를 식히려면 찬물이라도 끼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문을 열었다. 눈 앞에 보이는 물 단지와 바가지가 전부다. 일어서서 시원하게 몸을 적시면 주위 가재도구가 다 젖을 것 같아 최대한 팔과 다리를 동그랗게 모았다. 고양이가 몸단장하듯 바가지 속 물을 훔쳐 얼굴을 문지르니 감질이 났다.

"상담소 샤워 부스나 사우나를 주로 사용해요. 찬물이 시원하게 나오니까."

쪽방촌 사람들은 어디서 끈적한 땀을 씻어내는 걸까. 17년째 이곳에서 봉사활동 중이라던 관계자는 손 글씨로 휘갈긴 '게시판' 를 가리켰다. 동행목욕탕이라고 적힌 종이 위에 사우나 휴무일이 적혀 있다. 두 곳 다 쉬면 쪽방 상담소의 샤워부스를 사용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3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의 게시판. 2023.8.3/뉴스1 ⓒ News1 장성희 기자

동행목욕탕은 서울시가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에너지 요금 인상으로 씻기조차 어려운 쪽방촌 사람들이 건강을 챙길 수 있게 인근 목욕탕과 제휴를 맺어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무더위가 지속되자 이용객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한 한식뷔페에서 만난 동자동 주민 A씨는 "서울시에서 한 달에 2장씩 주니 사용은 한다"면서도 "요즘 날이 더우니 그 안에도 잘 못 들어간다. 최근 사용할 일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샤워시설 말고도 건강한 여름나기를 돕는 시설은 동자동 곳곳에 가득하다. 생필품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온기 창고부터 목욕탕과 식당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 배부까지. 좀전에 마주친 봉사단체 관계자들은 닭 손질이 한창이었다. 삼계탕을 만들어 다같이 몸보신할 계획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 지원은 대부분 쪽방 바깥의 이야기일 뿐이다. 현장의 다양한 정책과 지원은 아직까지 그들이 겪는 재난을 온전히 보듬어주진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몸을 뉘고 휴식을 취하는 '집'인 쪽방은 오늘도 폭염의 최전방에서 더위를 받아내고 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