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뒷골목→비엔날레…퀴어 무용수의 비상[이기범의 리스펙트]

모지민의 새 도전…베니스 비엔날레서 첫 공연
"이 사회서 사라져야 하나"…억압 속 20여년 공연, 다시 날기까지

편집자주 ...혐오로 얼룩진, 존중이 사라진 시대.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존중'의 의미를 되짚어 보려 합니다.

드래그 아티스트이자 무용가인 모어(본명 모지민) 씨가 11일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드래그 아티스트로서의 삶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24.4.1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난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어요. 발레리노가 아니라."

모지민 씨(46)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드래그 퀸(옷차림이나 행동 등을 통해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사람)',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퀴어(성소수자) 무용수', 그리고 '털 난 물고기 모어'.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저서와 다큐멘터리 영화 '모어'를 통해 이름을 알린 그는 사회적 억압 속에 아티스트로서의 욕망을 안고 20여 년을 다양한 수식어를 달고 활동해왔다.

최근 모 씨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향했다. 발레리나를 꿈꿨던 그는 이태원 드래그 퀸에서 퀴어 무용수로, 그리고 다시 아티스트로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 낯선 무대 위에 올랐다. 자신의 지난 20년간 활동을 매듭짓고, 앞으로의 20년을 그리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다.

◇시골 부모님 사준 100만원짜리 발레복…순탄치 않았던 '발레의 길'

"국민체조를 좀 기이하게 했어요. 그랬더니 중학교 체육 선생님이 발레에 소질이 있는 거 같다고, 그쪽 길을 가야 한다고 권했죠."

1978년 전남 무안에서 나고 자란 모 씨는 자신의 남다른 기질을 알아본 중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무용수의 길에 들어섰다. 시골 부모님은 빚을 내서 100만 원짜리 발레복을 사입혔고, 목포예술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장밋빛 기대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무너졌다.

한 선배가 여성성을 버리라며 뺨을 후려쳤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적 시선과 억압에 모 씨는 무너졌다. 군대에서는 커밍아웃 후 정신질환자 취급을 받았다.

모 씨는 "나는 이 사회에서 사라져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고, 죽음을 결심하고 이태원 환락가로 몸을 숨기게 됐다"며 "발레를 하던 삶은 시궁창으로 떨어졌고 먹고살기 위해 드래그 퀸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로미오와 줄리엣 앤 모어' 공연에서 모지민 씨가 줄리엣 역을 맡아 공연하는 모습. (모지웅 제공)

하지만 모 씨는 꿈을 놓지 않았다. 클럽 공연을 기반으로 20여년을 꾸준히 활동하며 각종 뮤지컬과 연극 등 공연에 참여했다. 미국 최초 성 소수자 인권 운동인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 뉴욕 극장 무대 위에도 섰으며, 뮤지컬 '헤드윅' 원작자인 존 캐머런 미첼 투어에도 함께했다.

지난해에는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획 공연 '로미오와 줄리엣 앤 모어'의 줄리엣 역할을 맡아 발레리나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냈다. 또 세종문화회관에서 영화감독 겸 작가인 이랑과 함께 낭독극 '왜 내가 너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해당 공연은 최근 앨범으로도 발매됐다.

타고난 '끼쟁이'인 그는 굴곡진 삶을 아티스트로서 조명 받는 현재를 위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모 씨는 "순탄하게 발레의 길을 걸었다면 '모어'라는 책과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 거고,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모지민·제냐(예브게니 슈테판) 부부의 모습 (모지웅 제공)

◇'퀴어 무용수'로서 20년 묵은 욕망…베니스 비엔날레로 향해

"나는 나를 남성이나 여성/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있고 없고/ 그저 인간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로서/ 아름답고 끼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모 씨가 자신의 에세이집 '털 난 물고기 모어'의 첫머리에 남긴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특정한 수식어로 규정받기 싫다는 항변이다. 스스로를 털 난 물고기처럼 이질적인 존재, 모어(毛魚)로 불렀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받고자 했다.

그러나 퀴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진 않는다. 한국에서 성 소수자가 억압받는 현실에 역설적으로 퀴어를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모 씨는 "굳이 퀴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지만, 한국에서는 자신이 퀴어임을 드러내기 힘들다"며 "퀴어 무용수라는 정체성을 끄집어내 다른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숨기지 말고 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지송 감독에게 배운 운전으로 지난해 운전면허 취득 후 뚜벅이의 삶을 졸업한 모지민 씨가 자신의 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지민 제공)

그는 한국 사회에서 억압된 아티스트로서의 욕망을 안고 최근 이지송 영상감독과 함께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로 향했다. 지난 19일과 20일 진행된 베니스 비엔날레 노마딕 파티에 참여해 '요강'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모 씨는 이번 공연을 아티스트로서 자기 삶의 분기점으로 여겼다.

'모어'로서 활동한 20년의 서사를 2000년으로 확장, 이른바 '2000년 된 오줌'을 분출한다는 설정이다. 진정한 아티스트냐 아니냐. 지난 20년을 털어내고, 앞으로의 20년을 가늠하겠다는 게 공연 목표다.

모 씨는 "한국 사회에서 받은 폭력,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폄하됐던 한을 담아 비엔날레에서 일종의 배설을 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이름이 조금 알려진 정도지만, 예술가로서 다시 시작하고 증명하겠다는 각오로 공연에 임했다"고 힘줘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며칠 뒤 공연을 끝낸 모 씨는 "살아있어 다행이다" "아 시원하다"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모지민 씨가 지난 19일에서 20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노마딕 파티에 참여해 '요강'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모지민 제공)

K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