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서울백병원' 폐원수순…중소 종합병원들 "남일 아니다"
도심 공동화에 대형병원 쏠림 현상으로 직격탄…누적적자 1745억
중소병원들 "의료체계 불균형…도서지역 의료환경 더 열악해질것"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으로 문을 열어 83년째 서울 도심을 지키던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이 만성적 경영난으로 폐원 수순을 밟고 있다. 서울 구도심 내 종합병원 중 가장 오래 버틴 사례이자 재단 측에서도 본원의 상징성 때문에 고민한 모습이다.
이번 일은 서울 내 구도심 공동화 현상과 매머드급 대학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기인했다고 의료계 종사자들은 보고 있다. 특히 200~300병상 내외 중소병원에 남 일이 아닌 게 수도권 대학병원이 수도권 안에서 10개의 분원을 추진하고 있어 경영난과 쏠림 현상이 극심해지진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오는 20일 이사회에서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의 본원인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상정해 폐원 여부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백병원은 환자 등에 관련 공지를 전달할 방침이다. 병원은 2004년 처음 적자로 돌아선 뒤 20년째 적자를 면치 못했다. 지난 2022년까지 누적 적자만 1745억원에 이른다.
요양병원, 전문병원 등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등 회생 방안도 강구했으나 외부 경영 컨설팅 업체에 "투자 비용 대비 이익이 크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서울백병원 외에도 상계·일산·부산·해운대백병원을 운영 중인 인제학원은 서울백병원의 직원 고용을 승계할 방침이다.
그렇다고 병원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11년부터 외부 경영 자문을 받기 시작해 2016년부터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TF) 조직을 꾸려 병상 감축, 인턴 수련병원 전환 및 전공의(레지던트) 미배치, 외래 중심 병원 전환, 병실 외래 공사 등 자구책을 이어왔지만, 대세를 꺾지 못했다.
서울 도심에 있던 종합병원이 문을 닫는 사례가 오랜 기간 잇따르고 있다. 2004년 중앙대 필동병원을 시작으로 2008년 이대 동대문병원, 2011년 중앙대 용산병원, 2019년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 2021년 제일병원이 문을 닫았다. 서울백병원이 가장 오래 버틴 편이기도 하다.
지난 1975년 지하 2층 지상 13층에 총 350병상 규모로 완공됐던 서울백병원은 당시 국내 최대 종합병원이었으나 주변에 서울대병원, 강북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병원이 마련되며 환자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주거지가 아니라 상주인구가 없고 직장인만 많은 특성상 중증 질환자 왕래가 적기도 하다.
살아남으려 애쓰는 종합병원은 서울백병원만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을지대학교병원(강남을지병원)은 지난 2020년 7월부터 문을 닫고 대규모 개·보수를 해 2023년 1월 건강검진 및 여성 암 회복 특화 종합병원으로 재개원에 나섰다.
이밖에 200~300병상 안팎의 중소 종합병원의 시름이 여전히 깊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의료원, 고려대병원, 길병원, 경희대병원, 아주대병원, 한양대병원 등 수도권 8개 대학병원이 수도권 내 10개 분원을 추진 중이라서다. 이 경우, 2028년까지 수도권에만 6300병상 이상이 늘어날 전망이다.
대학병원들의 확장 경쟁은 중소병원과 동네 의원을 몰락시키고 의료전달체계의 근간도 흔들어 무너뜨린다는 지적이다. 전국 중소 종합병원 또는 중소병원장 단체인 대한병원장협의회는 "대형병원의 분원 증설 경쟁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이들은 "대형병원들의 분원 경쟁은 의료환경이 가장 양호한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는 도서 지역 의료인력을 흡수해 열악한 도서 지역 의료환경을 더 열악하게 한다. 이 경쟁이 중소병원, 동네 의원의 목숨을 끊어 의료라는 생태계를 교란할 게 분명하다"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4월 6일 열린 제6차 의료현안 협의체 회의에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제한 등 병상 관리를 위한 법적·제도적 대책 마련과 의료기관 종별 기능 재정립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차전경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의협에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과 관련해 정책 제안을 했다. 이 문제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함께 의료기관 종별 기능 재정립 필요성에 대해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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