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뺀다더니 결과는 국영수 모두 불수능[2023결산]

대통령 지시 발단…'쉬운 수능' 관측에 N수생 몰렸지만 '불수능'
"사교육 경감 무색·킬러문항 여전"…'모호한 정의'에 혼란 지속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전국대학 지원 참고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지난 6월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은 일제히 혼란에 빠졌다. 당장 올해 치러지는 수능부터 출제 기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혼란의 발단은 6월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교육개혁 추진 방안과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였다.

윤 대통령은 이 부총리에게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발언 직후부터 교육·수사당국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킬러문항의 원흉을 '사교육 카르텔'로 지목하며 대대적인 수사·감사를 이어가는 한편 교육부는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에서 8문항, 2021~2023학년도 수능에서 18문항이 킬러문항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6월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이유로 대입 담당 국장을 전격 교체했고,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같은 이유로 사임했다.

'킬러문항' 배제에 따라 입시업계와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올해 수능 난도가 쉬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에 따라 반수생 등이 대거 수능 지원에 나서면서 전체 응시생 가운데 35.4%를 졸업생이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2005학년도 수능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를 의식한 출제당국은 '킬러문항을 배제하되 변별력을 확보하는' 시험 출제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수능 점수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그 결과 지난달 16일 치러진 2024학년도 수능에서 EBS와 입시업체들은 일제히 킬러문항이 출제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킬러문항이 배제된 수능은 전 영역 만점자가 1명에 그친 데다 표준점수 최고점이 국어 150점·수학 148점에 달하는 '역대급 불수능'으로 귀결됐다. '역대급 불수능'으로 불렸던 2022학년도 수능보다도 1점씩 높았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시험이 어려울수록 높아진다. 영어 또한 1등급이 4.71%로 절대평가 전환 이후 최저였다.

그에 따라 교육계에서는 또 다른 논란이 점화됐다. 당초 킬러문항 배제의 목표였던 사교육 경감이 무색해졌다는 것이다. 입시전문가들은 중고난도 문항이 다수 출제되면서 불수능 경향을 한층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모호한 킬러문항의 정의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수학 22번처럼 정답률 1%대 문항(EBSi 가채점 기준)이 등장하고 수능 교과교사, 교육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킬러문항이 출제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와 관련한 혼란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입시전문가는 "킬러문항의 정의는 명쾌할 수 없고 자의적인 해석이 불가피하다"며 "이 때문에 내년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공부하는 데 더 애를 먹고 불안한 마음에 사교육을 더 찾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