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오염수' 방류, 고래 생존권 위협 인정될까[세상을 바꿀 법정]

시민 4만명·고래 164마리 헌법소원 "정부, 필요 조치 안 했다"
정부 "방류 문제없어" 맞서…'고래' 청구인 인정 여부도 관심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인 동시에 나침반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법정에서 나침반의 방향을 돌려놓을 사건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세상을 바꾼 법정' 시리즈를 통해 과거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대체됐는지를 살펴본 데 이어 '세상을 바꿀 법정' 시리즈를 통해 나침반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짚어봤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10차 해양 투기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24.10.23/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헌법소원이 제기돼 헌법재판소가 심리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아 오염수 방류가 이뤄졌고 이에 따라 어업인 등의 생존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 재산권이 침해됐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번 청구인에 돌고래와 밍크고래 등이 이름을 올린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 2003년 이른바 '도롱뇽 소송'을 비롯해 그동안 동물이 원고인 소송이 몇 차례 제기됐지만 모두 '원고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일본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2023년 8월 처음 방류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10차례 오염수 방류를 완료했다. 11차 방류는 내년 2~3월 진행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방사능 검사 결과 안전기준을 벗어나는 사례가 1건도 없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외교적 조치·환경평가 안 해"…시민 4만명·고래 164마리 헌법소원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6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정부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을 방치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에는 해녀·어업인 등 관련 종사자와 시민으로 구성된 4만 25명이 이름을 올렸다. 남방큰돌고래 110마리와 밍크고래, 큰돌고래 등 54마리도 포함됐다.

피청구인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외교부·해양수산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원자력위원장·식품의약품안전처장·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으로 8명이다.

청구인들은 정부가 오염수 투기 반대 성명을 발표하거나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잠정조치 신청 등 외교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또 정부의 독자적·독립적인 방사선 환경 영향 평가, 일본산 수입 수산물 방사능 전수조사, 오염수 투기 행위에 대한 적절한 정보 제공과 국민들의 참여 보장을 하지 않은 점을 청구 이유로 들었다.

청구인들은 정부의 이 같은 행위가 청구인의 생존권, 직업 선택의 자유, 재산권, 환경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적 근거 없는 황당 괴담" vs "증거 쌓이고 오염 심해지고 있어"

우리 정부는 오염수 방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정부는 "첫 방류 후 올해 8월 19일까지 4만 9633건의 방사능 검사를 완료한 결과 우리 해역, 수산물, 선박 평형수 등에 대한 방사능 검사 결과 안전 기준을 벗어나는 사례는 1건도 없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되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문제 제기가 '괴담'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은 브리핑을 통해 "과학적 근거가 없는 황당 괴담이 거짓 선동임이 밝혀졌지만 근원지인 야당은 무책임한 행태만 계속하고 있다"며 "야당의 황당한 괴담 선동 아니었으면 쓰지 않았어도 될 예산 1조 6000억 원이 이 과정에 투입됐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헌법소원 변호단 소속 김영희 변호사는 지난달 27일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현황과 향후 대응 과제' 좌담회에서 "정부는 '오염수를 1년간 투기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증거가 안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천만의 말씀"이라며 증거는 쌓이고 있고 오염은 심해질 것이므로 지금부터 열심히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염수 방류가 계속 이어지는 만큼 소송 기간도 관건이다. 헌법소원 소송은 일반적으로 5~6년 걸리는 데다 더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빠르게 결과가 나왔다는 기후소송도 지난 8월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에 결론이 나왔다.

다만 청구인들은 오염수 방류가 30여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그 기간 내에라도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비상시국회의(추) 등 노동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2023.8.25/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도롱뇽은 기각, 고래는 될까…"비인간 동물 권리 인정돼야"

고래가 청구인으로서 인정될지도 관심이다. 그간 비인간 동물이 주체로 나선 민사·행정 소송은 몇 차례 제기됐으나 모두 '원고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도롱뇽 소송'으로 불리는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착공 금지 가처분 소송이다. 2003년 소송 제기 당시 원고에는 도롱뇽이 포함됐지만, 법원은 "재판을 청구할 법률적 주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자연물의 권리를 인정한 타 국가의 사례는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아르헨티나 법원은 2015년 동물원 우리에서 풀어달라는 오랑우탄 '샌드라', 침팬지 '세실리아'의 소송에서 이들을 인격체로 인정하며 청구를 받아들인 바 있다.

한 변호사는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는 고래도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에서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며 "비인간 동물,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여러 곳에서 나오는 만큼 우리 사법부도 적극적인 판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