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 전 '사전 반출' 필립모리스…대법 "추가 부담금 정당"

부담금·출연금 미리 내고 재고 확보…인상가에 판매해 차익
"실제 반출 시점으로 재계산…폐기물부담금 소급 적용은 안돼"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2024.5.2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2015년 담뱃세 인상을 앞두고 담배를 '꼼수 반출'한 한국필립모리스에 부담금과 출연금을 추가로 부과한 정부 처분은 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다만 폐기물부담금의 경우 근거가 되는 시행령 개정이 늦어진 만큼 이를 소급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도 함께 내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3일 오후 한국필립모리스 주식회사가 한국환경공단 이사장과 보건복지부 장관, 재단법인 연초생산안정화재단 이사 등을 상대로 낸 폐기물부담금 부과 처분 취소 청구 등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필립모리스는 2015년 1월부터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한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자 공장에서 제조한 담배를 임시창고로 옮겼다. 물류센터에 보관하던 담배를 구 지방세법상 '미납세반출 대상 담배'로 신고해 담뱃값 인상 전 담배가 반출된 것처럼 전산에 입력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필립모리스는 개정 전 세율에 따른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를 신고·납부할 수 있었다.

부담금과 출연금은 담배가 제조장에서 반출될 때 부과되기 때문에, 담뱃세 인상 전 기준으로 이를 미리 내고 담배 재고를 확보해 뒀다가 인상된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차익을 얻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등은 담배가 2014년이 아닌 2015년에 제조장에서 반출됐다며 개정 법령을 적용해 540여억 원을 추가로 부과했다. 필립모리스는 자사에 부과된 폐기물부담금과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출연금 부과 처분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모두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담배가 2014년 12월 31일 전에 제조장에서 반출됐으므로 개정 법령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원일치 의견으로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담배가 실제로 반출된 시점에 따라 부담금과 출연금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먼저 필립모리스가 담배를 공장에서 임시창고로 옮긴 것은 "담뱃세 인상 차액을 얻기 위해 담뱃세 인상 전 통상적인 행위나 거래 형태에서 벗어나 제조장에서 일시적 방편으로 마련된 장소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며 담배의 반출 시점을 '임시창고에서 물류센터로 옮겼을 때'로 판단했다.

물류센터에 보관하다가 '미납세반출 대상 담배'로 신고한 후 2015년 1월 이후에야 도매업자 등에게 배송된 담배 역시 "반입 장소(물류센터)에서 다시 반출할 때 제조장에서 반출한 것"이라고 봤다.

다만 2015년 1월 2일부터 2월 2일까지 반출된 담배에 대해서는 인상된 폐기물부담금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폐기물부담금 납부 의무의 근거가 되는 자원재활용법 시행령 개정안은 2015년 2월 3일부터 시행됐으므로, 이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돼 무효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다른 담뱃세와 달리 폐기물부담금을 인상하는 내용의 개정이 지연된 것은 국가기관이 이를 적시에 하지 못한 탓"이라며 "소급입법을 통해 담배 제조업자에게 폐기물부담금을 추가로 부담시키는 것은 개정 지연에 대한 책임을 담배 제조업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