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제동원 피해 '제3자 변제' 고수하지만… 커지는 부담
배상금 지급 대상자 15명→26명 늘어… '수용 거부' 있을 듯
각급 법원 계류된 유사 소송 60여건… "재원 고갈 대비해야"
- 노민호 기자, 이창규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이창규 기자 = 우리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재차 피해자 측 손을 들어줬다.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이번 판결이 한일관계에 다시 '악재'로 떠오르는 걸 막기 위해 올 3월 내놓은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통해 해결한다는 방침이어서 피해자 측의 호응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법원 2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11명이 일본제철·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2개 업체를 상대로 낸 손배소와 관련해 21일 원고(피해자) 승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따라서 해당 업체들은 원고들에게 1인당 1억~1억5000만원 상당의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 측은 앞서 2018년 10~11월 우리 대법원이 해당 기업들에 대해 같은 판결을 내렸을 때도 호응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우리 정부에 제공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는 2018년 판결 당시 우리나라의 "국제법 위반"을 주장하며 반발하는가 하면, 당시 피해자들이 배상금 변제를 거부하는 해당 기업들의 국내 자산을 압류해 현금화하려하자 이듬해 7월 반도체 제조 관련 핵심소재를 시작으로 수출규제 강화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에 한일관계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악화됐었다.
그랬던 한일관계가 회복기조에 접어든 건 우리 정부가 올 3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제시하면서 일본 측의 법적 부담을 덜어주면서다.
정부는 제3자 변제 해법 발표 이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2018년 판결에서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 15명 가운데 11명에 대해 판결급과 지연이자를 지급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일본 기업들에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재단이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재단이 일본을 대신해 강제동원 피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피해자는 총 26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2018년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 중 4명이 여전히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 참여' 등을 요구하고 우리 정부 해법 수용을 거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 승소한 11명 중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게다가 오는 28일에도 유사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예정돼 있는 등 각급 법원에 계류돼 있는 강제동원 피해배상 손배소가 60건이 넘는다는 점도 정부로선 부담이 된다.
현재는 재단이 과거 한일청구권협정 수혜기업인 포스코가 출연한 40억원 등을 바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배상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피해자가 계속 늘면 그 재원 고갈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단 점에서다.
정부는 재단이 지급하는 강제동원 피해 배상금 재원을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마련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이 우리 정부 해법을 수용하지 않으면 일본 측은 계속 우리 정부더러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며 책임을 떠넘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서 우리 정부가 내놓은 해법을 일본 측도 수용했단 점에서 우리 대법원의 이날 판결이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국내에서 정부 해법이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부정적 여론이 계속 커진다면 향후 대일 행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나마즈 히로유키(鯰博行)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이날 김장현 주일본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해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항의했고, 일본 정부 대변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관방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제3자 변제' 해법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응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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