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韓핵무장 요구, 위험하고 어리석어…北과 실용적 외교협상 해야"
올해 들어 첫 공개 강연…"한미, 北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서 출발해야"
- 김현 특파원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21일(현지시간) 한국 내에서 독자 핵무장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과 관련,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판하면서 현실적·실용적 접근을 통한 북한과의 외교협상을 촉구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현실적·실용적 접근'이라는 주제로 가진 강연에서 "한국 내부에서 핵무장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한국이 비핵화의 목표를 포기하고 핵무장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그것은 한미 관계를 악화시키고 동아시아의 핵무기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가능한 유일한 선택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통한 북한과의 외교협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가 공개 강연에 나선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지난해 6월부터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 전 총리는 이번 강연을 끝으로 사실상 연구소에서의 연구 일정을 마무리 하게 된다.
이 전 총리는 "1993년 제1차 북한 핵 위기가 시작된 이래 미국과 한국은 북한과 간헐적으로 비핵화 협상을 벌여왔지만,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의 여러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 핵 협상 실패의 이유로 △북한 생존욕구의 무시 △북한 붕괴론의 오판 △압박 효과의 과신 △정책 일관성의 결여 △완벽주의적 접근의 함정 등을 꼽았다.
그는 특히 지난 2019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영변 핵시설 해체는 북한이 요구한 5대 경제제재 해제의 대가로 부족하다며 회담을 결렬시켰던 것을 거론, "영변 기지 이외의 핵 프로그램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일부 핵과학자들은 영변 시설이 북한 핵능력의 90%까지를 차지하는 '심장'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미국이 그 경제 제재를 해제하면서 영변 핵시설을 먼저 폐기하고 그 다음 단계로 진척시켰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총리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해 "미국과 한국의 북한 정책은 북한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미국이 원하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을 상호 위협 감소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시작해야 한다'는 1999년 페리 보고서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바깥의 눈으로 보면 북한은 윤리적, 정치적으로 많은 결함을 가진 나라이고, 미국과 수십년 동안 대립하며 미국에 대한 불신과 깊은 안보불안을 갖게 된 나라이기도 하다"면서 "따라서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완벽주의적 접근으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 또는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을 무시하거나, 경제 제재로 압박을 강화하며 북한 붕괴를 기다리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키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자극하는 등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협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북한 비핵화 문제를 '상호 위협 감소' 및 북미 관계 개선과 나란히 올려놓고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그는 "워싱턴과 서울은 평양과의 협상을 위한 장기 로드맵을 준비하고, 국내 정치의 단기적 변화에 방해받지 않는 지속적이며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2005년 6자 회담에서 참가국들이 '약속 대 약속,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해 단계적으로 합의를 이행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설명하면서 "뿌리 깊은 상호불신을 극복하고 협상을 성공시키려면 북한과 미국이 점진적, 동시적, 상호적 방식으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향해 가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있는 것을 지적, "그런 생각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능력 강화와 중국 의존 심화를 초래했다"면서 "그것은 미국이 바라는 세계질서에도,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일각에서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 등이 이뤄질 경우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 동맹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과 관련해선 "그런 인식이야말로 편협한 사고방식"이라며 "냉전의 종결이 독일 또는 일본 주둔 미군의 존재나 미국과 그 두 나라의 동맹을 위태롭게 하진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통일 이후에도 지역의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믿었고, 나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과 관게를 정상화한다면 북한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키우고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만약 한국이 소련, 중국과 수교한 1990년대 초에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수교했더라면 지금의 북한 핵문제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북한을 향해선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믿을 수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북한은 더 이상 고립과 대결의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남북 화해협력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남·북한은 전쟁의 위협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기존 남북간 합의를 이행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남과 북은 다시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북한은 미국과 다시 만나 조건 없는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가 더는 대립이나 전쟁 위기와 핵위협에 시달려선 안된다. 모든 관련국들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의 길에 동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향해 "즉각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 행동 없는 약속만으로는 충분한 신뢰를 얻기 어려운 국면이 되고 있다"면서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행동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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