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북한의 민소매 원피스?"
"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 제29편 패션스타일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여름은 '노출의 계절'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문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다이어트(북한어: 살 까기) 상품의 광고 카피용으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에 팔, 다리가 드러낸 복장은 가만히 있어도 소나기 같은 땀방울이 쏟아지는 폭염에 체온을 내리기 위해 고안한 의상의 형태일 텐데도 말이다.
3일 전 27일 북한은 전승절(정전협정일) 69돌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루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는데, 이중 북한의 국기 게양 때 눈물을 글썽거린 리설주 여사도 화제가 되었다. 최근 남북의 영부인들의 의상은 '패션정치' 기사를 쓰기 좋아하는 언론매체들의 단골 소재가 되는데, 그날 리설주 여사는 지난 4월 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경축연회처럼 흰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어 더욱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북한의 민소매 달린 옷(원피스)은 과거에도 유행했던 여름옷의 한 유형이다. 북한의 산업미술 자료들을 살펴보면 50~60년대 민소매 원피스는 주로 아동복에서 볼 수 있었다. 시원한 A형 치마의 여아 원피스나, 발랄한 반바지와 함께 입었던 남아용 민소매 셔츠는 당시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60~70년대 여성 여름옷 중 원피스가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에서 유행한 원피스 스타일은 허리선을 강조하며 다양한 깃의 형태를 갖고 있다. 북한의 원피스는 이후에도 유행을 타지 않는 여성들의 불변(?)의 패션 아이템으로 남으며, 시대에 따라 옷감과 문양에서 현대적 미감을 가미한 것이 관찰된다.
80~90년대 북한의 여름 원피스는 반팔이 기본이지만, 과하지 않은 정도의 어깨가 가려진 팔 노출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산업미술전람회에서는 북한의 의상 미술가가 과감한 '끈 원피스'를 처음 선보여 자료를 보면서 놀라기도 하였다. 이전 자료에서는 한 번도 등과 어깨를 드러내는 북한의 여성 일상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원피스가 유행된 지 반세기가 흘러도 여름 원피스 패션스타일은 크게 변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북측 원피스들은 어깨와 등을 노출하지 않는 옷의 형태, 무릎을 넘지 않는 치마 길이, 허리선의 강조, 여성스러운 문양과 색상 사용, 굽 있는 구두 착용을 제안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 사회에서 여성의 다소 과감한 패션스타일이 허용되는 경우는 무대에 오르는 유명 가수·연주자들에게나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군복과 정장 차림의 관람객들로 꽉 찬 전승절 69돌 기념행사에서 평양미술대학에서 디자인한 것(위 사진)처럼 어깨가 드러나는 무대의상들을 입고 나온 여성 가수들이 크게 주목을 받으며 노동신문(2022년 7월 28일 자, 6면)에까지 개별 사진들이 소개됐기 때문이다.
북한 사회나 대한민국에서도 참 듣기 민망한 '노출'이라는 단어는 북한의 의상도안에서 뿐만 아니라 산업미술계 전반에서 금기어가 아닐까 싶다.
과거 '조선예술'(2015. 1호)에서 건축 장식 미술가 박권일은 "일부 나라들에서는 미술에서 형식주의가 성행하던 나머지 최근 연간에 구조를 노출시키는 건축구조가 생겨났으며 가구 창작가들도 가구 창작에서 각 부분품들의 연결 관계를 노출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현대재료들을 아무렇게나 조립하여 이상한 가구 형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하는 글을 실었다.
그의 글을 읽고 생각해 보니, 북한의 '조선건축'에서 한때 국내외에서 유행했던 '노출콘크리트' 건축물이 소개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가구 도안에서도 쇠, 나무의 기본 골조구조가 드러나는 현대적 디자인 스타일은 거의 보지 못하였다. 아마 이와 같은 양식은 북한 사회에서 자본주의식 유행을 따르는 형식주의로 폄훼된다.
최근 북한은 비사회주의 현상을 뿌리 뽑기 위해 영상물, 사진뿐만 아니라 생활양식에 맞지 않은 옷차림, 머리 단장, 유행어까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산업미술계에서는 의상미술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이러한 반사회주의적인 양식 배격을 강조해오고 있어 '땡빼바지'(스키니진)와 같은 패션 테러물(?)을 금기하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북한 산업미술계에서 이러한 비사회주의 양식 침투를 경계하며 항상 '고상한 생활양식'에 대해 강조하는데, 북측이 말하는 '고상한' 스타일이란 무엇일까?
'노출의 계절' 그 궁금증이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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