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자녀 지키려고…" 폭력남편 살해한 아내에게 이례적 집유 판결

검찰 '양형 부당' 주장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기각'
재판부 "자신과 자녀 보호…참작할 만한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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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스1) 김지혜 기자 = 남편의 지속적인 폭력에 이기지 못하고 남편을 살해한 아내에게 이례적으로 1심 형 그대로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남편을 살해한 아내 A씨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검찰은 '양형 부당'을 주장하며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며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고법 울산제1형사부 손철우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항소심에서 검찰의 기소를 기각하고 1심의 형 그대로 집행유예를 유지한다고 15일 밝혔다.

지난해 A씨는 자신의 남편의 손목을 흉기로 긋고 베개로 얼굴을 눌러 질식사로 숨지게 했다.

A씨의 남편 B씨는 2017년쯤 건축 관련 사업에 실패한 후 경제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많은 날을 술을 마시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지속해왔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결국 A씨는 아들 2명과 딸 1명과 함께 시어머니 집에 들어가 살게 됐다.

그럼에도 남편 B씨의 폭력적인 행동은 계속됐고, 지난해 A씨는 남편의 행동을 제지할 목적으로 경남지역의 한 병원에서 수면제 7알을 처방받았다.

이후 같은 해 7월 수면제 14알을 추가로 처방받아 가루로 만들어 방 안 서랍에 보관했다.

사건이 발생한 7월 중순 새벽. 술에 취한 남편 B씨는 잠든 아내를 깨워 부부관계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화가 난 남편은 부엌에서 32㎝ 흉기를 가져오라고 아내에게 협박하기도 했다.

실랑이를 벌이던 와중에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 A씨는 서랍 속 준비해 둔 수면제를 남편의 커피에 넣어 남편을 재웠다. 이후 A씨는 잠든 남편의 속목을 여러 차례 긋고, 베개로 얼굴을 눌러 살해했다.

A씨는 수사기관에 "남편이 없으면 모든 사람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보호해야 할 가치지만, 지속해서 가정폭력을 당해온 점, B씨가 없어져야만 자신과 자녀를 보호할 수 있다는 극단적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점 등 참작할만한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A씨를 다시 구금하면 자녀들이 부모의 부재 속에서 성장해야 하고, B씨 유족들도 탄원서를 제출했다”며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의 의견이 법원을 기속하는 효력을 갖진 않지만 제도 취지를 감안하면 배심원의 의견은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배심원 7명은 A씨 범행에 모두 유죄를 평결했고, 집행유예 선고형에도 만장일치 의견을 냈다.

joojio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