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하다 은퇴하는 게 소망"…'MZ 해녀' 정희선이 사는 법

[지방지킴] '유산 4관왕' 제주 해녀 사상 첫 3000명대 붕괴
올해 행정목표는 '해녀 육성'… "물질 외 소득 창출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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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들이 해산물 채취를 위해 바다로 나가고 있다. ⓒ News1 DB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해녀, 한번 해 볼래?"

정희선 씨(28)가 해녀가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대학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 중이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제안에 호기심이 생겨 바다에 몸을 던진 게 그 시작이었다.

희선 씨는 "그때 아버지께서 '동네 어른들이 추천하던데?'라고 하셨다"고 웃으며 지난날을 돌아봤다.

1년간 준비를 마치고 22세 때인 2018년 '해녀증'을 받아 공식적으로 해녀가 된 희선 씨는 지난 6년간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2리 앞바다를 누비며 누구보다 꾸준히 물질을 해 왔다.

그는 "바다라곤 해수욕장밖에 안 가 봤는데 (물속에) 막상 들어가 보니 저 멀리까지 투명하게 내다보이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면서 "내게 바다는 여전히 재미있고 신기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부모님 일을 도우며 해녀 일을 하고 있다는 희선 씨는 "힘들어도 몸이 버텨줄 때까지 마음껏 물질하다 은퇴하는 게 내 작은 바람"이라며 당찬 포부도 밝혔다.

제주 해녀. (문화재청 제공)/뉴스1

그러나 요즘 제주에선 희선 씨 같은 젊은 해녀를 보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제주 해녀 총 2839명 가운데 20대는 단 3명(0.1%)이고, 비교적 젊은 층인 30~40대 해녀도 93명(3.3%)뿐이다. 20~40대 해녀를 다 합쳐도 100명이 채 안 되는 것이다. 나머지 2743명(96.6%)은 모두 50대 이상이다.

제주 해녀 수가 사상 처음 3000명 아래로 떨어진 건 더 큰 위험신호다. 1970년 1만4143명이었던 제주 해녀는 1980년 7804명, 1990년 6827명, 2000년 5789명, 2010년 4995명으로 계속 줄다가 2017년 3985명으로 4000명 선이 붕괴했고, 작년엔 3000명 선마저 뚫렸다.

이는 신규 해녀 유입이 너무 적은 탓이다. 최근 5년간 신규 해녀 수를 보면 2019년 50명, 2020년 30명, 201년 40명, 2022년 28명, 2023년 23명 등 총 171명에 불과하다. 한 해 평균 35명도 안 된다. 이런 추세라면 신규 해녀 수가 한 자릿수로 떨어질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신규 해녀 유입 감소에 가장 안타까워하는 건 바로 해녀들이다. 제주 해녀 문화가 2015년 '국가 중요어업 유산'을 시작으로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 그리고 작년에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업유산'까지 국내외 유산 등재 4관왕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음에도 명맥이 끊길지도 모르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23일 오후 제주웰컴센터에서 '제주해녀어업시스템 세계중요농어업유산 등재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이와 관련 제주도 해양수산국은 올해 5대 전략과제 중 하나로 '지속 가능한 해녀 어업 육성'을 선정하고, 올 상반기 안에 신규 해녀 양성 등 해녀 어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종합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논의된 내용을 보면 도는 우선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40세 미만 신규 해녀에겐 3년간 월 50만원의 정착 지원금을, 그리고 신규 해녀 가입이 이뤄진 어촌계엔 100만원의 인센티브를 각각 지급하기로 했다. 도는 또 수협·어촌계와 함께 신규 해녀 정착 실태조사를 벌이고, 신규 해녀들이 기존 해녀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링 서비스 체계도 마련하기로 했다.

도의 계획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해녀학교에 'MZ세대(1980~2010년대 초반 출생) 맞춤형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다수 젊은 해녀들이 소득이 일정하지 못해 '투잡'을 뛰고 있는 만큼 '물질 외 소득'으로 삼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관련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도는 이와 함께 해녀학교의 직업 해녀 양성반 과정을 표준화하고 해녀 인턴제를 도입하는 한편, 제주도 남부뿐 아니라 동부에도 해녀학교를 설립하는 방안까지 조만간 마련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도는 △마을 어장 전복·홍해삼 등 종자 방류 △고부가가치 해조류 양식 기반 조성 △소라 가격 안정 기금 조성 △헬스케어 서비스 지원 △세계 중요 농어업 유산 활용 방안 등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 △'해녀의 전당' 건립 △전국 해녀협회 설립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고희신 도 해녀정책팀장은 "해산물 채취 말고도 또 다른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부분이 없으면 신규 해녀 양성이 어렵다고 보고 MZ세대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있다"며 "3월부터 제주·서귀포시 등 유관기관과 본격적인 논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mro12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