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조작해 15억 빼돌린 간 큰 공무원의 마지막은?[사건의 재구성]
서류 조작해 17억 부정 지급…도박 등에 탕진
법원 "청렴·공정성 훼손" 징역 7년
- 이시우 기자
(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지난 3월, 천안시청이 술렁였다. 건설도로과에서 보상업무를 담당하던 A 씨(40)의 비위가 발각되면서다. A씨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자 토지보상금이 토지 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지급된 사실이 발견됐다. 사실을 확인한 천안시는 A씨를 직위해제했다. 4억여 원의 보상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지급한 사실을 찾아내 경찰에 고발했다.
수사 결과 A씨는 2023년, 한해 동안 서류를 조작해 17억여 원의 보상금을 부정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15억여 원을 되돌려 받아 도박 등에 탕진했다.
A씨는 지난 2007년 천안시 종합체육시설관리소 청원경찰로 채용됐다. 이후 천안시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2018년 11월부터 건설도로과 보상팀에서 근무했다.
별 탈 없이 보상급 지급 업무를 수행하던 그는 지인에게 거액을 빌려준 뒤 돌려받지 못하면서 삐걱댔다.
A 씨는 법정에서 "가장으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어렵게 모은 돈을 사기당하면서 도박에 손을 댔다가 지금의 죄까지 저지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2023년 1월, A 씨는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을 찾아 주민 B 씨(69·여)에게 "실제 받을 수 있는 보상금보다 더 많이 받게 해주겠다"며 "지급된 보상금 중 일부를 달라"고 현혹했다.
승락을 받은 A씨는 서류 조작으로 면적을 부풀려 영농 보상금 6700여만 원을 B 씨에게 지급했다. 적정 보상금은 139만 원이었다. A씨는 차액을 현금과 수표로 돌려받았다.
범행에 성공한 A 씨는 한발 더 나갔다. 같은 마을의 또다른 주민을 찾아가 같은 방법으로 범행에 끌어들였다. 이 마을 주민 6명이 범행을 도왔다.
범행이 발각된 뒤 사기방조 혐의로 법정에 선 주민 C 씨(56·여)는 "이 일로 이웃들의 안색이 바뀌고 사이도 멀어졌다"며 후회했다.
범행은 점점 대담해졌다. A 씨는 서류 조작으로 땅의 소유자를 바꿔치기 했다. 타인 명의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에 병천면 주민 D 씨(68·여)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덧붙인 다음 복사하는 방법으로 서류를 위조했다. 이를 토대로 천안시와 토지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보상금 1억 1855만 원을 지급했다.
A씨는 2023년 한해 동안 59건의 공문서를 허위 작성 또는 위조했다. 조작 서류에 속은 천안시는 23차례에 걸쳐 17억 1866만 658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해 피해를 입었다.
범행 규모가 커지자 보상금을 되돌려 받는 방법도 바꿨다. A 씨는 보조금 부정 수급자들로부터 체크카드를 넘겨받아 수익금을 직접 빼돌렸다.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인들의 통장으로 173회에 걸쳐 8억 4378만 원을 이체했다.
수사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서류 조작 등의 범행에 나아가기 전인 2022년 9월, 보상금을 신청한 E 씨(68)에게 "보상금이 최대한 높게 나올 수 있도록 신경 썼다"며 수고비를 요구했다. A씨는 시청 주차장에서 현금 1500만 원을 건네 받았다.
법원은 A씨에 대해 "주민들을 범행에 끌어들이고, 범죄 수익 대부분을 도박자금으로 사용하는 등 공무원 직무의 청렴성과 보상금 지급 업무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징역 7년 및 벌금 4000만 원을 선고했다. 또 부정 수익금 10억 7300여만 원을 추징했다.
범행에 가담한 마을 주민 7명에 대해서는 6월~2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형 집행을 유예했다.
A씨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천안시의 징계 절차가 이뤄지지 않아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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