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훨 날다 '퍽'… 새들의 계속되는 '비명횡사'
맹금류 스티커 '버드세이버' 효과 놓고 의견 분분…조류 종류·부착밀도 등 고려해야
- 천선휴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전남 화순의 한 지방 국도를 달리던 A(28)씨. 도로 갓길에 세워진 투명 방음벽엔 육식성조류(맹금류)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새들의 충돌사고를 막기 위해 붙인 것이다. 그런데 방음벽 아래에는 새의 사체가 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 9월까지 전국 야생동물 구조치료센터로 접수된 조류 충돌 사례는 6034건. 이 중엔 솔부엉이(500마리), 황조롱이(397마리), 소쩍새(326마리) 등 천연기념물도 다수 포함돼 있다.
충돌사고를 당한 새는 대부분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지난 5년간 충돌로 인해 폐사한 개체 수는 3834마리고 치료 후 방사된 새는 1947마리에 불과하다.
이처럼 한 해 1000마리가 넘는 새가 충돌사고를 겪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죽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문화재청이 2009년부터 조류 충돌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버드세이버(맹금류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지만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많다.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동물유전자원은행에서 제출받은 ‘2011 조류 충돌 사고 예방을 위한 버드세이버 부착 후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버드세이버 부착 후 조류 충돌 사고가 감소하는 추세지만 표본 수가 적어 통계 분석은 불가능하다. 문화재청이 조사한 지역은 8곳에 불과했다. 도심에 위치한 소규모 천연기념물 치료소를 대상으로 버드세이버를 배포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류에게 가장 위협을 주는 맹금류의 모양으로 스티커를 만들자는 제안이 나와 맹금류 스티커로 버드세이버를 제작했다”면서 “스티커를 붙이고 충돌 사고가 줄었다고 하는데 검증하기 힘들다. 효과를 알려면 모든 건물에 붙여야 하는데 현실상 어렵지 않나”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맹금류 스티커의 효과 자체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환경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맹금류 스티커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새 모양 스티커를 붙인다고 새 충돌사고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라며 “사람들에게 ‘새가 많이 부딪히니까 조심하자’는 상징적인 교육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버드세이버는 촘촘하게 붙여야 효과가 있다”면서 “외국은 유리창에 간격을 맞춰서 테이프를 붙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맹금류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하는 한국조류보호협회의 주장은 다르다. 한국조류보호협회 관계자는 “5년 전부터 매년 3000~4000장씩 만들어서 배포하고 있다”면서 “80% 이상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유리창에 맹금류 스티커를 붙이는 건 새 충돌사고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유정칠 경희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는 “창문 전체에 스티커를 붙이는 게 아니어서 새가 빠르게 날아가다 스티커가 붙여지지 않은 공간에 부딪힐 수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버드세이버를 부착하려면 먼저 그 지역에 서식하는 조류의 종을 조사한 뒤 스티커를 어느 간격으로 붙일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제대로 실험하지도 않고 맹금류 스티커만 나눠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직접 버드세이버를 신청해 부착한 적이 있다고 밝힌 지역 동물병원 관계자는 “스티커가 없는 빈 공간에 새가 충돌했다”면서 “더 많이 붙이거나 다른 형태의 버드세이버를 부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새가 부딪히는 곳이 대부분 대형 건축물이나 투명 방음벽인데, 건물은 사유재산이라 개입하기 어렵고 방음벽을 설치하면 방범상 문제가 있다”면서 “외국 사례 등을 조사하며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 내년에 여러 주체가 모여 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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