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카르페 디엠, Just Do It!

캘리그래퍼 박서영이 쓴 '카르페 디엠' / 사진 = 네이버 블로그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이태원 참사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유족들은 이런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린다.

"사랑한다, 말해줄 걸…."

세월호 침몰 사고와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얼마 전 늦은 밤 학원에서 돌아오던 고등학생이 골목길에서 음주운전자의 자동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불과 집을 몇 m 앞에 두고 학생은 그런 변을 당했다. 나는 그 동영상을 보면서 가슴을 쳤다.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 형제가 생각나서다. 그 앞을 30초만 빨리 지나가거나 30초만 늦게 지나갔더라면….

아침에 어린이들은 인사한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오후에 어린이들은 인사한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학생들은 아침에 집을 나선다. 학교에 갔다 오기 위해서다. 직장인들도 아침에 집을 나선다. 회사에 다녀오기 위해서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려 학교에도 가고, 회사에도 간다. 아침에 집을 나가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일상(日常)이라 한다. 그 일상의 총합이 인생이다.

직장인들은 일요일 밤만 되면 괴롭다. 째깍째깍 월요일이 다가오는 게 미치게 싫다. 나도 회사에 다닐 때 그랬다. 회사원들은 때때로 직장 생활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다고 푸념한다. 왜 집을 나섰다가 집에 돌아오는 게 지겹다고 느껴지는 걸까.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는다. 집을 나갔다 돌아오는 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대도시에서는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와 회사에 다닌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라. 집에 무사히 돌아오려면 매 순간 운도 따라야 한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출근 시간대의 환승역은 끔찍하다. 우르르 계단을 내려갈 때 압사 사고의 위험은 상존한다.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 있다. 교회 목사의 설교처럼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기적의 연속이다. 그럼 대중교통이 아닌 승용차로 다니는 출퇴근을 하는 사람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나.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테러가 일어났을 때 신문 국제면에서 읽은 런던 시민의 멘트가 잊히지 않는다.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줄 비로소 깨달았다."

사고사는 아침에 멀쩡하게 집을 나섰다가 저녁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 경우를 말한다. 한강에서 죽은 그 의대생은 그날 아침 자신의 운명을 털끝만큼이라도 예감했을까.

직장에 다니는 내 아들은 이태원 사고 하루 전날 밤 같은 시각에 친구들과 그 골목길을 걸어보았다고 했다. 우연히, 화(禍)를 면했다. 내가 20대였다면 나도 이태원에서 벌어지는 핼러윈 축제가 궁금해 몸이 근질거렸을 것이다.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나 9·11테러 사건을 간접적으로 겪을 때마다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희생자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사망자가 내 피붙이이거나 특별한 관계일 때는 차원이 다르다. 갑자기 우주가 사라져버린 것 같은 충격이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벤 하퍼가 절친 히스 레저의 죽음을 두고 했다는 말. '지구의 축이 틀어진 것 같은 기분'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질서 같은 게 흐트러진 기분'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에서 출발한다. 1만 년이 넘는 원시 종교가 무속(巫俗)이다. 모든 문명권에서 무속은 존재했고, AI(인공지능)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빈번하게 등장하는 신탁(神託)이란, 신이 사람을 통해 그 뜻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신탁은 어떤 방법으로 전달되는가. 바로 점성술(Astrology)이다.

별자리 위치를 관측하여 인간의 운명과 미래를 점치는 점성술.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할 때 미국 할리우드에서 점성술이 다시 유행했다. 그들이 특별히 어리석어서일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포스터 / 사진=네이버

호라티우스의 오드(Odes)에 등장

우리는 결국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현재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라틴어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영어로 Seize the day. '오늘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 디엠'은 BC 23년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가'(詩歌·Odes)에 처음 등장했다. carpe는 '잡다, 따다, 즐기다, 활용하다' 등의 뜻. diem은 '그날, 현재'라는 의미다.

그래서 '카르페 디엠'을 seize the day, enjoy the moment 등으로 해석한다.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원문을 보면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seize the day, put very little trust in tomorrow)

연구자들은 호라티우스의 메시지를 이렇게 해석한다. '미래는 내다볼 수 없다. 미래에 일어날 기회를 잡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폼페이 유적에서도 '카르페 디엠'의 메시지가 발견되었다. 모자이크 벽화의 제목은 '술 항아리를 든 해골'. 죽으면 술을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시문학의 핵심 주제가 '카르페 디엠'이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절실하게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모든 시인이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찬미했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술항아리를 든 해골' / 사진=위키피디아

시인 구상(具常·1919~2004). 시인을 생전에 두어번 만난 일이 있는 나는 그가 타계하고 나서야 시인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아산 정주영의 묘소에서도 그랬고, 에밀 졸라를 연구하는 여정에서도 나는 구상을 만났다. '꽃자리'에서 시인은 '카르페 디엠'을 노래한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가지 않은 길'의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도 '카르페 디엠'이라는 시를 썼다. 1938년에 나온 시에서 시인은 노래한다.

"행복해져라, 행복, 행복 / 그리고 현재의 즐거움을 잡아라."

1989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영화가 '카르페 디엠'을 대중화했다. 고(故) 로빈 윌리엄스가 영어 교사 존 키팅 역으로 나왔다. 키팅이 학생들에게 말한다.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기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드세요."

니코스 카잔차키스 / 사진=위키피디아

2023년은 니코스 카잔차키스 탄생 140주년이 되는 해다. 그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를 '인생의 책'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그리스인 조르바'는 번득이는 어록의 저장고이기도 하다.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와인 한 잔, 군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닷소리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 중에 '잇츠 나우 오어 네버(It’s now or never)'가 있다. 내 나이 푸르를 때 나는 그 뜻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흥얼거리곤 했었다.

'카르페 디엠'은 음악, 영화, 회화, 광고 등의 주제로 줄기차게 변주된다. 그뿐이 아니다. 젊은 층이 타투로 손목이나 팔뚝에 새기는 최애 문구가 '카르페 디엠'이다.

카페에서 현악4중주단까지 상호나 단체의 이름으로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식당이나 술집의 상호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게 '카르페 디엠'이다. '오늘은 한번뿐이니 지금 문을 열고 들어와 즐겨라.'

세계적 브랜드의 광고를 보면 그 메시지가 '카르페 디엠'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적지 않은 남자들이 할리 데이비슨(Harley Davidson)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 할리 데이비슨의 광고 문구 중에 이런 게 있다. "언젠가 타려고 하겠지만 언젠가라는 요일은 없다."

'카르페 디엠'을 가장 명료하고 강렬하게 압축한 것이 나이키의 광고 카피가 아닐까. 'Just Do it!'

'카르페 디엠'하면, 이란성 쌍둥이처럼 등장하는 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죽음을 기억하라!

나이키의 로고 '저스트 두 잇' / 사진=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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