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보니] 스마트TV 시대 '애플TV 4K'의 존재 의미
'애플TV 4K 3세대'…전작 대비 성능 개선·팬리스 적용
애플 기기 연결성 빛나지만, OTT 통합 경험 아쉬워
- 이기범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애플TV는 인터넷 시대를 위한 DVD 플레이어와 같다.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아이튠즈 콘텐츠를 PC나 맥에서 와이드스크린 TV로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2007년 애플이 내세운 '애플TV'의 정체성이다. 첫 출시 당시와 지금의 애플TV는 큰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모토는 같다. 미디어 콘텐츠 소비 경험을 애플의 생태계 안에서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애플이 꿈꾸던 오래된 미래다.
그로부터 약 16년이 지난 지금 미래는 현실에 이르렀다. 그러나 애플이 꿈꾸던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다. 미디어 콘텐츠 소비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옮겨왔지만, 그 중심엔 애플TV가 있지 않다. TV의 디지털 전환에 셋톱박스가 필요했던 2007년과 달리 스마트TV가 보편화된 탓이다. 또 크고 무거운 셋톱박스 대신 작고 가벼운 동글형 셋톱 등 대체재가 넘쳐난다. 구글 크롬캐스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애플은 애플TV를 꾸준히 내놓고 있다. TV를 경유하는 디지털 시장에 아직 미래가 있다고 내다본 셈이다. 지난해 연말 출시한 '애플TV 4K 3세대'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아이폰13' 두뇌 탑재…전작 대비 변화 폭은 크지 않아
애플TV 4K 3세대는 기본적으로 2021년 출시된 2세대 제품의 개량형이다. 경험의 폭에 큰 차이가 없다. 셋톱용으로는 과분한 '아이폰13'의 두뇌 'A15 바이오닉' 칩이 탑재돼 빠른 반응 속도를 제공하지만, 전작도 이미 'A12 바이오닉'을 기반으로 기존 셋톱박스보다 월등한 성능을 뽐낸 탓이다. 애플은 앱 로딩 속도가 20% 단축됐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성능적 변화는 미미하다.
가장 체감하기 쉬운 변화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 우선 셋톱박스 상단의 'tv' 딱지가 사라지고 애플 특유의 '감성'을 자극하는 사과 로고만 남았다. 네모반듯한 디자인은 여전하다. 무광으로 마감된 상단과 먼지 수집에 최적화된 유광 옆면도 그대로다. 대신 부피와 무게가 눈에 띄게 줄었다. 무게는 425g에서 214g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인터넷 선을 연결하는 이더넷 단자를 뺀 와이파이 모델의 경우 208g까지 가벼워진다.
이는 발열을 막기 위한 '팬'을 제거한 덕이다. 성능 대비 소비 전력이 적은 A15 바이오닉을 활용한 만큼 팬 없이도 발열 억제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3세대 모델부터 HDR10 플러스(+) 규격을 지원한다. HDR10+는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개발한 차세대 영상 표준 규격 기술이다. 더 넓은 명암·색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HDR(High Dynamic Range)을 지원하는 콘텐츠와 기기에서 사용된다. 기존 애플TV는 다른 HDR 규격인 돌비비전까지만 지원했다. 이에 따라 더 폭넓은 HDR 콘텐츠 감상이 가능해졌다.
애플TV 리모컨인 '시리 리모트'는 이전 모델과 거의 같지만, 충전 단자가 라이트닝에서 USB-C로 개선됐다.
◇애플이 꿈꾸는 미디어 콘텐츠 소비 경험
애플TV 속 동명의 앱은 애플이 꿈꾸는 미디어 콘텐츠 소비 경험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과거 '아이튠즈'를 통해 모든 콘텐츠가 자신들을 경유해 소비되도록 만들었던 것처럼 애플TV 속에 다양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주문형 비디오(VOD)를 통합해 제공한다. OTT 서비스에 상관없이 다양한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서 이용자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애플을 경유해 이음매 없는 일관된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하고자 한다.
현재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는 물론 국내 OTT 웨이브, 티빙, 왓챠 등도 앱을 내려받아 이용할 수 있다. 유튜브나 트위치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슬램덩크'를 검색하면 왓챠를 통해 제공되는 해당 콘텐츠를 바로 시청할 수 있는 형태다. 혹은 홈 화면 상단에 추천 콘텐츠로 뜨는 '공조2: 인터내셔날'을 선택하면 이를 제공하는 디즈니+, 티빙 둘 중 하나의 서비스를 골라 이용할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준다. 각 OTT로 분절된 콘텐츠를 한데 모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문제는 더 이상 업체들이 애플식 가두리 양식에서만 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넷플릭스는 정책상 콘텐츠 데이터를 외부에 공유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애플TV에 넷플릭스 앱을 내려받아 넷플릭스 안에서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이용하는 건 가능하지만, 애플TV 내에서 콘텐츠 검색은 불가능하다. 맞춤형 큐레이션 형태로도 제공되지 않는다.
'시리'를 활용한 음성 검색도 제한적으로만 작동한다. 예를 들어 "왓챠에서 슬램덩크 틀어줘"라고 말하면 "현재 지역에서는 할 수 없어요"라는 응답만 돌아온다. 반면 "유튜브에서 침책맨 틀어줘"라는 명령에는 옳게 된 동작을 해낸다.
애플이 자사 OTT인 '애플TV 플러스(+)'를 선보이며 플레이어로 뛰어든 순간, 경쟁 OTT 업체들의 소극적인 애플TV 대응은 예견된 일이다. 실제 대부분의 맞춤형 콘텐츠는 애플TV+를 중심으로 추천된다.
실시간 채널 셋톱박스로서 애플TV의 한계점도 지적된다. 제품이 꺼진 상태에서 음성 명령을 통해 특정 채널을 틀 수 있는 경쟁 제품과 달리 실시간 채널에서도 시리의 활용도는 제한적이다. 국내에서는 SK브로드밴드와 손잡고 실시간 IPTV 채널을 가져왔지만, 인터넷망부터 IPTV까지 SK브로드밴드로 교체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험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연결성이 눈부신 애플 가두리 양식장
애플TV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애플 기기 및 서비스와 연동할 때다. 이는 처음 애플TV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셋톱박스가 처음 설정 단계에서 인내심 테스트기로 변신하는 것과 달리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만 있다면 와이파이 설정, 애플 계정 등록, 이전에 내려받은 앱 복원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아이폰에 리모컨 앱이 자동 생성돼 리모컨 없이도 아이폰으로 애플TV를 조작할 수 있다. 단순 리모컨 기능뿐만 아니라 문자 검색이 필요한 순간에도 'ㄱ, ㄴ, ㄷ' 때아닌 한글 공부를 할 필요 없이 아이폰으로 바로 연동해 쉽게 타이핑을 할 수 있다.
애플TV와 아이폰의 연동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기능은 '색상 균형 조정'이다. 이른바 '캘리브레이션'을 고가의 전문 장비 없이 '페이스ID'가 탑재된 아이폰만 있으면 할 수 있다. TV에서 내는 색을 아이폰 전면 카메라로 분석해 TV 색상을 최적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TV 문제인지 사용 중인 '아이폰11 프로'의 문제인지 분석 과정에서 계속 오류 메시지가 떠 실제 효과를 확인하진 못했다. 해당 기능은 TV에 따라, LCD냐 OLED냐에 따라 효과가 다르다는 평이 있다.
'에어팟 프로'나 '에어팟 맥스'가 있을 경우 공간 음향 기능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아이폰에 에어팟을 연결해 쓰듯 애플TV 주변에서 에어팟을 꺼내 들면 바로 연동된다. 이를 통해 홈시어터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집에서도 공간 음향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최근 애플 뮤직 앱에 추가된 노래방 기능 '애플 뮤직 싱'은 애플TV에서 더 큰 빛을 발한다. 인공지능(AI) 기반으로 보컬과 '브금'(BGM)을 분리해 어떤 곡이든 보컬 음량을 조절해 가사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다.
애플의 게임 구독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는 애플TV에서 콘솔 경험을 제공한다. 게임 컨트롤러를 연결하면 그럴싸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다. 애플은 지속해서 무선 게임 컨트롤러 호환성을 늘려 왔다. 이전에는 지원하지 않았던 닌텐도 스위치 컨트롤러도 이제는 쉽게 연결할 수 있었다. 애플이 애플TV의 프로세서를 개선한 배경에는 게임 시장을 겨냥한 부분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게이머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엔 어딘가 하나씩 나사가 빠진 게임들이 많지만 말이다.
스마트TV 시대에 애플TV의 존재감은 옅어졌다. 인터넷 시대를 위한 DVD 플레이어는 TV에 통합됐고, 콘텐츠 업체들은 애플을 경유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플랫폼 성채를 쌓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여전히 미디어 콘텐츠 소비 경험에 대한 갈증이 있다. 버벅대고, 균일하지 못한 UI 등 스마트하지 못한 스마트TV의 사용자 경험에 인내심의 바닥을 느끼곤 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 애플TV는 여전히 효용을 갖는다. 특히 애플이 보장해주는 화질과 음질에 대한 믿음이 굳건히 남아 있는 이상 일정 수준 이상의 수요는 보장된다. 남은 건 애플TV에 단순 미디어 소비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기기가 아닌 플랫폼으로 탈바꿈한 아이폰처럼 말이다. 애플은 '스마트홈'의 허브 역할로서 애플TV 가능성을 지속해서 시험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의 오래된 미래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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