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삼성 반도체 오늘 50주년…"AI 메모리 초격차 재현" 결기

도쿄선언으로 시작된 초격차, 30년 1위 일궈…AI 메모리 대응 실패
반도체 수장 전영현 부회장, HBM 추격 총대…"파운드리도 포기 안해"

2004년 반도체 30주년을 맞아 기념서명을 하고 있는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제공)2020.10.25/뉴스1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삼성 반도체가 6일 50주년을 맞았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메모리 반도체 1위를 일궈낸 삼성전자의 기념비적 해이지만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빛이 바랬다.

삼성전자(005930)는 반도체 50주년을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심기일전하고 있다.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 부문의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한 만큼 메모리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50주년인 이날 별도의 행사 없이 조직 정비와 내년도 사업 준비에 매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9일 경기도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2023.10.19/뉴스1

'30년 세계 1위' 반도체 신화, AI에 주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는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지난 1974년 사재로 웨이퍼 가공업체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TV 등에 들어가는 단순 칩을 생산하는 정도의 회사였지만 고 이병철 창업회장이 1983년 도쿄선언을 통해 반도체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됐다. 1984년 가동을 시작한 기흥 반도체 팹은 도쿄선언의 결과물로 반도체 신화의 뿌리가 됐다.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선 삼성전자는 1992년 64메가비트(Mb) D램, 1994년 256Mb D램, 1996년 1기가비트(Gb) D램을 개발하는 등 초격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90나노미터(nm=10억분의 1m)급 2Gb 낸드플래시(2002년), 60나노급 8Gb 낸드(2004년), 더블데이터레이트(DDR)3 SD램(2005년), 32기가바이트(GB)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8Gb LPDDR5(2018년), 3세대 10나노급 D램(2019년), 3나노 초미세공정(2020년), 12나노급 D램(2023년) 등 무수한 최초 개발 타이틀을 따냈다.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삼성전자는 1993년 이후 30년간 메모리 시장 1위를 지켰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이 AI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삼성전자의 1위 타이틀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대표되는 AI 메모리 수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서 SK하이닉스에 선두를 내줬다. 올해 3분기에는 영업이익마저 SK하이닉스에 따라잡혔다.

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이 18일 경기 용인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New Research & Development - K'(NRD-K) 설비 반입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NRD-K는 삼성전자가 미래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해 건설 중인 약 3만 3000평 규모의 최첨단 복합 연구개발 단지다. 2030년까지 총 20조 원이 투자된다. (삼성전자 제공) 2024.11.18/뉴스1

'위기극복' 총대 멘 전영현…HBM 경쟁력 되찾아올까

삼성 반도체의 위기는 메모리사업부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9년 HBM 전담팀을 해체한 것이 발단이었다.

사업성이 없다는 삼성전자의 판단과 달리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규모언어모델(LLM) 훈련에 필요한 초고성능 D램의 필요성이 커졌고 HBM이 첨단 D램의 중심에 섰다. 꾸준히 HBM 사업을 키워왔던 SK하이닉스가 단숨에 AI 메모리 선두로 오른 이유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이례적으로 DS부문장을 교체했고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영현 부회장이 HBM개발팀을 부활시키고 D램 설계 전문가인 손영수 부사장을 책임자로 발탁했다.

내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도 초강수를 뒀다. 메모리사업부장 자리에 새로운 인물이 발탁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전 부회장이 직을 겸임한다.

부문장이 책임지고 HBM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DS부문 내 AI센터를 신설한 것도 AI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이달 중 엔비디아에 5세대 HBM(HBM3E) 납품을 시작으로 점유율 확대를 본격화하겠다는 전략이다.

6세대 HBM(HBM4)부터는 TSMC의 베이스다이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36GB 용량의 5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HBM3E' 12H를 개발했다. 올해 상반기 중 양산에 돌입한다. (삼성전자 제공) ⓒ News1

'2030년 1위' 꿈은 잠시 접고…파운드리 고객사 확보부터

메모리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는 삼성전자는 적자가 지속되는 파운드리 전략도 수정했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를 잠시 접어두고 사업을 현실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투자를 축소하고 라인 가동률도 낮춘 상태다. 독보적인 1위인 TSMC와 선단공정 경쟁을 하기보다는 3나노 같은 주력 공정에서 고객사를 확보해 차근차근 성장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9.3%로 2위다. 반면 1위인 TSMC는 점유율이 64.9%에 달한다. TSMC가 AI 칩 수주를 싹쓸이하면서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도 조직개편 및 사장단 인사를 통해 파운드리 사업부를 영업과 기술개발 '투트랙'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파운드리사업부장으로 발탁된 미주총괄 출신의 한진만 사장이 고객사 수주에 나서고, 파운드리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선임된 남석우 사장이 기술개발을 맡는 식이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3나노 공정에서 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