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만에 엔화 환율 '150엔 선' 돌파…韓 수출·여행수지 악재

작년에 이어 엔저 장기화 조짐…BOJ 전환기대 지연
수출 악영향…880원대 환율에 여행수지도 하방압력

일본 엔화 가치가 33년 만에 가장 낮았던 지난해 11월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 (자료사진)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미국 물가가 예상을 웃돌면서 달러 강세가 탄력을 받고 일본 엔화와 우리 원화의 가치는 낮아졌다. 특히 엔화는 3개월 만에 달러당 150엔 선이 붕괴하면서 지난해 부각됐던 엔저 현상이 보다 장기화하는 모습이다.

엔저 장기화로 인해 한국 경제에는 여행수지와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

15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150.2엔을 기록했다.

달러당 150엔은 엔저 현상의 강도를 판단할 때 1차적인 저항선처럼 여겨진다. 지난해 11월 엔화 환율은 150엔 선을 뚫었다 낮아진 이후 이달 12일 다시 150엔 선을 넘겼다.

원화 대비로는 887.9엔 수준으로, 엔화 가치가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낮아졌다.

올 초만 해도 920원까지 올랐던 원·엔 환율이 2개월 만에 880원대로 돌아온 것이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지난해 말 비교적 잠잠해졌던 엔저 현상이 재차 고개를 든 배경에는 예상을 상회하는 미국의 거시경제 지표가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1월 전년 대비 3.1% 오르면서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이에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 시기가 상반기 말 혹은 하반기로 밀린다는 기대가 확고해지자 올 들어 힘을 얻었던 엔화는 다시 고꾸라졌다. 미·일 금리차가 당분간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엔화 매도가 확대된 영향이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일본 중앙은행(BOJ)의 통화정책 전환은 '아직'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지난 2년간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일제히 돈줄을 죄는 가운데 일본은 장기 불황에 따른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자 거꾸로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완화 정책을 고수해 왔다.

BOJ가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돈줄을 죄려면(금리 인상) 물가가 지속해서 올라야 하고(디플레이션 탈출 → 인플레이션) 이를 위해서는 실질임금이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 내 실질임금은 아직 하락 국면에 있다. 겨우 오른 물가 상승률 또한 둔화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2분기 임금 협상(춘투·春鬪) 전후로 BOJ의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

사실상 엔저가 4개월은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마에다 에이지 전 BOJ 통화정책 담당 이사는 앞서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3월 노사 협상에서 임금 인상률이 전년 대비 4%에 이를 가능성이 크고 일본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자료사진) /뉴스1

원·엔 환율이 2개월 만에 880원대로 떨어지면서 한국의 여행수지는 추가 하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값싼 엔화는 직관적으로도 우리 국민의 일본 여행을 늘리고 일본인의 방한 관광은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실제로 작년 연간 여행수지는 125억3000만달러 적자로 1년 전(-83.7억달러)보다 손실이 49.7% 불어났다. 수지 악화의 많은 부분은 내국인의 일본 여행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내국인 출국자 수는 686만2740명으로 전년(109만3260명) 대비 527.7% 폭증했다.

앞서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지난해 12월 여행수지를 설명하면서 "일본인 관광객 감소 등으로 여행 수입이 줄어 적자 규모가 소폭 늘어났다"고 언급했다.

엔저 장기화는 한국 수출을 끌어내리는 요인도 될 수 있다.

엔화가 저렴해지면 반대로 원화는 비싸진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비슷한 물품을 수출한다는 전제 아래 엔저는 한국의 가격 경쟁력이 밀리는 환경을 조성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05~2022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엔화 가치가 1%포인트(p) 하락할 때마다 한국의 수출 물량은 0.2%p, 수출액은 0.61%p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 0.6%의 0.8%p를 순수출이 기여했을 정도로 추후 경기 회복에 있어 수출의 중요도가 높아졌다. 최근 한·일 수출 경합도가 하락한 터라 엔저에 따른 타격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엔저 장기화로 인해 일본 수출 기업이 '호재'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후퇴함에 따라 엔화 약세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며 "엔화 약세는 수출·제조업으로 대변되는 자동차, 반도체, 자본재 업종의 이익 개선세를 증폭시킨다"고 분석했다.

icef08@news1.kr